“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자명한 진리’를 근거로 식민지 미국은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사람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니,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 등의 권리”라고 독립선언문은 이어 말한다.
“사람은 평등”하다는 이 짧은 한마디가 지켜졌다면 인류의 삶은 얼마나 평온했을까. 미국의 역사는 이 한마디를 현실에서 구현해내려는 오랜 투쟁의 기록이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 등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의 신조라며 이를 내세웠을 때, 그 말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men)은 평등”하다고 했을 때 ‘사람’은 당연히 유럽출신 백인남성, 인디언원주민도, 흑인노예도, 여성도 모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미국은 ‘평등하게 창조’되어 천부인권을 누려온 자들과 그에 끼지 못한 자들이 밀고 당기며 한뼘 한뼘 보편적 평등의 장을 확장해온 지난한 싸움의 현장이다. 그 싸움의 큰 줄기 중 하나가 투표권이다. 2022년 미국은 투표권 싸움에 돌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신년 첫 과제로 투표권법 제정을 들고 나왔다. 여러 달째 상원에 발목잡혀있는 투표권 법안들을 살려내 유권자들이 마음껏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주적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입김에 따라 마냥 극우로 치닫는 공화당과 반사적으로 극좌 목소리가 커지는 민주당 - 극한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투표권 법제정을 둘러싼 양당의 대립은 첨예하다. 공화당 의원들은 똘똘 뭉쳐 반대하고, 상원 경력 36년인 바이든은 필리버스터 규정을 바꿔서라도 법안들을 통과시키라고 상원 민주당을 다그친다. 올해는 중간선거의 해, 누가 얼마나 투표하느냐에 따라 정치 지평이 바뀐다. 바이든은 전투태세이다.
21세기 미국에서 투표권이 왜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는가. 남북전쟁 끝나고 나온 수정헌법들, 1965년 제정된 투표권법으로 마무리된 이슈 아닌가 -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그런데 법제정이 끝이 아니다. 법조문의 허점을 공략해 효력을 무산시킬 수 있는 것이 현실, 법의 한계이다.
미국에서 유색인종/여성의 참정권 쟁취는 일종의 법적 허점보완 과정이었다. 애초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참정권을 보장받은 것이 아니다. 출발점은 남북전쟁 후 제정된 수정헌법 13조, 노예제가 금지되면서 ‘모든 사람’의 범주가 확대되었다. 이어 수정헌법 14조가 미국에서 출생/귀화한 ‘모든 사람’의 시민권을 보장했다. 흑인노예들이 시민이 되었다. 1870년 수정헌법 15조는 인종, 피부색, 노예전력에 의거한 투표권 제한을 금지했다. 유색인종이 투표할 권리를 얻었다. 여성이 ‘모든 사람’에 포함된 것은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로 성별을 근거로 한 투표권 차별장벽이 무너졌다.
흑인이 투표권을 갖게 되자 남부 주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오랜 세월 누려온 백인우월의 전통을 맥없이 빼앗길 수는 없었다. 많은 지역에서 흑인이 백인보다 수가 많으니 백인들로서는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인두세, 문맹 테스트 등의 짐 크로우 법들이 만들어졌다. 세금을 내고, 시험을 통과해야 시민의 자격이 생겨 투표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가난하고 문맹인 백인들을 위해서는 ‘할아버지 조항’이 만들어졌다. 1860년대 중반 기준, 할아버지에게 투표권이 있었으면 직계자손은 자동적으로 투표권을 갖는다는 조항이었다.
재산 있고 교육 받은 흑인들을 막기 위한 방책들도 고안되었다. 난해한 시험이었다. 예를 들어 앨라배머에서는 ‘비누 한 개 속 거품 수는?’ ‘노새 한 마리에 털은 몇 개?’ 따위의 문제들이 버젓이 나왔다. 흑인 투표권은 자연스럽게 유명무실해졌다. 이 모든 차별적 요건들을 금지함으로써 수정헌법 15조를 강력히 시행하도록 만든 것이 1965년 투표권 법이었다.
그리고는 근 60년 지난 지금, 투표권은 다시 위협받고 있다. 공화당 주도 19개 주에서 지난 1년 사이 투표권을 제한하는 각종 주법들이 제정되었다. ‘선거를 도둑맞았다’ ‘선거는 조작되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발맞춘 조치들이다. 부재자투표, 우편투표, 유권자 등록, 조기투표, 유권자 신원확인 등의 절차를 까다롭게 함으로써 ‘사기’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자격 있는 유권자들의 투표를 막는 현대판 짐 크로우 법이라고 민주당과 민권단체들은 반발한다.
미국에서 인종 간 투표율 격차는 크다. 2020 선거 투표율은 백인 유권자 71%, 유색인종 유권자 58%였다. 먹고 살기 어려운 소수계가 투표 당일 투표소에 가서 투표하기는 여의치 않다. “나 하나쯤이야”하며 대충 넘어가고 만다. 이들이 편한 시간에 편하게 투표할 수 있도록,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민주당이 투표권법 제정을 추진하는 목적이다. 한마디로 공화당이 주도한 각 주의 투표 제한법들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는 주간이다. 그의 생일인 15일부터 법정기념일인 17일까지 민권단체들의 행사가 줄을 잇는다. 주제는 투표권 제한 반대. 수십 수백만명을 감동시켰던 킹 목사의 사자후가 생각난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분연히 일어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미국의 신조, 그 참 뜻대로 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 그가 인종차별 없는 나라를 꿈꾼 때로부터 60여년, 미국은 만민평등이라는 험준한 고지 어디쯤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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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