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도 채 남지 않은 한국 대선판이 때 아닌 ‘멸공 논란’으로 뜨겁다. 발단은 한 재벌그룹 부회장이 지난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숙취 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이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다.
여기에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 후보가 8일 이 그룹이 운영하는 마트를 찾아 멸치, 약콩, 라면 등을 구입하면서 정치권도 논쟁에 가세했다. 윤 후보는 장을 보는 사진과 함께 ‘달걀 파 멸치 콩’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달파멸콩’은 문재인 정권을 파해 공산주의를 멸하자는 취지로 해석됐다. 여기에 국민의 힘 나경원, 김진태 전 의원 등이 멸치, 콩을 구입하는 사진을 게시하며 ‘멸공 릴레이’를 이어갔다.
윤 후보와 일부 국민의 힘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이에 편승해 표만 쫓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여당은 물론이고 국민의 힘 내부에서조차 역풍을 우려하며 너무 나갔다는 지적이 나왔다. 할 말은 많지만 당이 분위기를 고려해 참는다며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국민의 힘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자 윤 후보는 “멸치 육수를 내고 좋아하는 콩국을 만들기 위해 구입한 것”이라는 옹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다. 공당의 대선 후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유치한 ‘색깔론’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인지, 아니 자기 생각이란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윤석열의 ‘멸공 퍼포먼스’는 스스로의 아이디어와 판단에 따른 것일까. 여러 정황에 비춰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선거본부 재편 후 영향력이 커진 청년보좌역들 혹은 이준석 대표의 지침과 권고에 따라 수행한 유치한 놀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2030 이탈에 위기감을 느낀 윤 후보와 선거본부가 ‘반 중국’ 정서가 강한 일부 젊은 층의 표심을 되돌리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색깔론’ 놀이와 함께 후보는 앞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7자 공약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는 또 하나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또한 이른바 ‘이대남 표심’을 겨냥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누구 아이디어에 따른 것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이준석 대표는 ‘멸공’과 ‘여가부 폐지’ 퍼포먼스로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2030에서 윤 후보 지지가 폭등하고 있다”고 자평하면서 후보 단일화 없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다. 철지난 색깔론과 여성혐오 자극으로 일부 극우성향 젊은이들의 마음을 얻어 일시적으로 지지율을 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합리적인 유권자들의 마음은 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계산은 ‘소탐대실’의 오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윤 후보와 국민의 힘이 걱정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윤석열 아바타’론이다. 윤석열이 자기 확신이나 충분한 정책 이해 없이 젊은 보좌역들과 이준석의 생각에 따라 ‘바람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멸공 퍼포먼스에 대한 궁색한 해명과 여가부 폐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 회피는 이런 의구심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동안 윤석열이 노정해온 ‘자질 리스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21세기 공당의 대선 후보라면 유치한 색깔론 따위에 함몰되는 시대착오적 모습을 더 이상 보여서는 안 된다. 또 자신의 공약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고 전달하지 못하는 후보는 국가지도자로서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