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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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거짓말 바이러스

2022-01-12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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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2020년 초반쯤이면 코비드를 건강과 삶의 질에 관한 과거의 주요 이슈로 이야기하게 되리라 기대했었다. 효과적인 백신이 기적에 가까운 속도로 개발됐으니 미국과 같은 문명국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백신을 보급하는 것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처럼 손쉬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직껏 팬데믹을 떨쳐내지 못한 이유가 무얼까? 부분적인 문제는 바이러스의 창조적 진화다. 델타 변이의 치사율과 요즘 유행하는 오미크론의 전염력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훨씬 효과적으로 팬데믹에 대처할 수 있었다. 이를 가로막은 최대 요인은 정치적 동기를 지닌 거짓말의 위력이었다.

구체적인 거짓말과 이로 인한 피해를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이 모두가 정치와 관련되어있다는 사실이다. 백신거부의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다 거센 반발에 부딪힌 평론가는 필자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백신접종을 받지 않은 미국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공화당 지지자가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접종 거부의사를 밝히거나, 접종을 받지 않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물론 이들 모두가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정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앞으로 점점 더 그러리라는 주장 또한 틀리지 않다.


예를 들어 10월에 나온 카이저 패밀리 파운데이션(KFF) 서베이에 따르면 백신 미접종자의 60%가 공화당 지지자인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또한 찰스 가바의 카운티별 데이터 분석결과,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득표율이 평균 1%포인트 오를 때마다 해당 카운티의 백신 접종률이 0.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가 어떻게 ‘의학적 기적’의 기반을 그토록 심하게 훼손할 수 있었던 걸까? 필자는 공화당 정치인들과 우파 언론에 의해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세 가지 중요한 거짓말에서 단서를 찾고자 한다.

첫 번째 거짓말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별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파 논객인 러시 림보가 코로나바이러스를 흔한 감기 바이러스에 비유한 이래 8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이 코비드 감염증으로 사망했으니 독자들은 아마도 이런 주장이 사라졌으리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은 완전접종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입원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들어 새로운 변종바이러스에 대한 반응을 ‘비합리적 히스테리’로 일축한다. KFF 서베이가 가리키듯 코비드를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는 비이성적 태도를 고수하며 비합리적 히스테리와 거리를 두었던 수백만 명의 비접종 공화당원들과 마찬가지로 루비오 의원 역시 비합리적 히스테리를 슬쩍 피해간다. 반면 아직껏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미접종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지극히 취약하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합리적 지적에 보수적인 논객들은 일제히 분노를 터뜨렸다. 폭스뉴스의 터커 칼슨은 대통령이 미접종자를 ‘인간이하’로 취급한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두 번째 거짓말은 백신이 비효율적이라는 억지주장이다. 하원법사위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추가접종이 효과가 있다면 오미크론 변종이 번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트윗을 연달아 날린다. 그들이 지적하려는 바는 오미크론이 숱한 돌파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반면 차고 넘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접종자들의 입원률과 사망률이 비접종자들에 비해 훨씬 낮다는 점은 철저히 외면한다.

마지막 거짓말은 접종여부가 전적으로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즉 백신접종을 받거나 받지 않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선택의 문제라는 얘기다. 예컨대 그레그 에봇 텍사스 주지사는 개인적 선택권 침해를 근거로 연방정부의 백신의무화를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동시에 에봇이 이끄는 주 정부는 치솟는 코비드 확진 건수와 입원률 증가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연방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텍사스에서 코비드가 기승을 부리는 부분적 이유는 사기업들이 종업원들의 백신접종을 의무화하는 것을 에봇이 막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명민한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공화당의 주장이 거짓일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백신이 있으니 코비드를 무시해도 된다. 하지만 백신은 효과가 없다.” “백신접종은 개인적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품격에 대한 비열한 공격이다.” “접종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자유시장에 관한 문제이지만 직원과 고객을 보호하려는 민간기업의 결정은 자유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화당의 백신접종 방해는 당의 이념을 지키려는 일관된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맹목적 권력추구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이런 주장은 의미 없는 잠꼬대처럼 들린다. 성공적인 백신접종 캠페인이 바이든 행정부의 치적이 될 터이니 모든 논리를 총동원해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게 그들의 속내다.


반 백신 전략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코비드의 기세는 국가 전체를 침울하게 만들었고, 백악관을 장악한 정당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불가피하게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 정부가 코비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총력전을 펼쳐온 공화당은 예상대로 팬데믹을 끝내지 못한 책임을 온통 바이든에게 돌리고 있다.

파괴적인 백신 공작 정치의 성공은 그 자체로 끔찍한 일이다. 지지자들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해서라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냉소주의의 막강한 영향력을 입증해주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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