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인터넷을 통하여 인사를 보내 온 글이 제법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이 호랑이 그림이 곁들여 있었다. 그런가 하면 신문을 보니 단체들과 영업체들의 새해 인사 광고에도 온통 호랑이 그림이다.
생각을 해보니 88 올림픽 마스코트가 호돌이 이었는가 하면 민화에서 항상 단골로 그려지는 대상 또한 호랑이 그림이다. 참으로 한국 사람들의 호랑이 사랑이 대단한 것 같다.
허나 예부터 한국 사람들은 호랑이를 사랑하기보다 이용하였다. 어린 시절 아기가 울면 “울지 마라 호랑이 온다” 하며 달랬다는 것만이 아니다.
한국에는 옛말부터 전쟁이란 말이 없었다. 아마도 청일전쟁은 일본에서 배워서 처음 쓴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사람들은 ‘난'이란 단어만 썼다. 묘청의 난, 이괄의 난, 홍경래의 난, 동학 난 뿐만이 아니라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심지어 6.25도 6.25 동란이었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하면 백성들은 보따리 싸들고 깊은 산으로 도망을 쳤으며 쫓아오지 못하게 낸 소문이 “이곳은 호랑이가 출몰하는 곳”이었다. 씁쓸한 맛이다.
근본적으로 12간지에 호랑이가 들어간 것부터가 아무리 중국에서 만든 12간지라고 해도 잘못 된 것 같다. 하기야 잔나비는 한국 땅에 없고 뱀이나 쥐는 별로 환영할 만한 것이 못되고 용이야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한마디 더해서 순수 한국말은 호랑이가 아니라 “범”이다. 호랑이는 범 호(虎) 자에 승냥이 냥(狼)으로 범과 이리(늑대) 같은 맹수라는 뜻이나 가축이나 먹어 치우는 해로운 짐승이지 백수의 왕이란 뜻이 아니다.
호랑이에 얽힌 일본과의 기분이 좋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임진왜란 때에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이 조선 땅의 호랑이 씨를 말리겠다고 함경도 일대를 누빈 것은 물론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어 진귀한 동물로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진상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의 내면에는 조선 사람들의 호랑이 숭배랄까 의타심에 코를 납작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일제 36년간 조선 주둔군 장성들과 고관대작들의 스포츠가 호랑이 사냥이었으니 그런 의식이 깔려있었다고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일본 우파의 막강한 실력자 아베 신조 전 수상의 외할아버지이며 전후 일본의 수상을 지냈던 기시 노부스케가 해방 전후 당시에 “아직도 한국에 호랑이가 있느냐” 말했다는데 한국은 아직도 미개한 나라라고 깔보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임인년(任寅年) 범의 해가 시작되었다. 요즈음 한국의 20대, 30대 젊은 친구들의 거침없는 질주를 보면서 마음이 흐뭇하다.
내가 열거했던 호랑이의 어두운 이야기에서처럼 과거의 패배의식, 의타의식, 그리고 초라한 마음을 모두 털어버리자고 이야기 하고 싶다. 이제부터 호랑이의 또 다른 모습 즉 진정한 백수의 왕처럼 힘찬 걸음을 내딛자고 말하고 싶다.
밝은 범의 해를 꿈꾸며 범의 긍정적인 면을 마음에 품고 힘찬 미래를 설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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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묵 / 문인/ 맥클린,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