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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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애착

2022-01-08 (토) 장아라 /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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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우리집이 늘 깨끗하고 잘 정돈된 집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일을 하셨고 식구도 많았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도 많았고 아무튼 인테리어 잘된 집하고는 거리가 먼 집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도 늘 정갈하고 깨끗하고 청결한 곳이 있었으니 부모님의 이부자리였다.

어머니는 정말 이불 하나는 늘 완벽했다. 이불장에 들어있는 이불들이 다 그랬다. 빨아놓은 다음 계절의 이불들이 착착 개어져 층을 이뤄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어렴풋이 생각나는 기억으로는 다듬잇돌에 개어져 리드미컬하게 빨래방망이로 오랜 시간 두들기던 것 중에 하나도 이불보였던 것 같다. 그 이불들은 정말 빳빳했고 접힌 부분은 확실히 각이 잡혀있었다.

어머니는 풀을 먹여 말리는 작업까지 하셨다. 그리고 큰 대바늘로 바느질하여 네 모서리는 접어서 꿰맸다. 안방 전체에 요를 깔고 이불보를 꿰맬 때 나도 돕는답시고 바늘을 잡으면 어머니가 한 부분과 내가 한 부분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결과물이 나왔지만 일은 좀 일찍 끝났다. 여름에는 까칠까칠하고 두꺼운 삼베를 그 위에 덧입혀 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나셨다. 겨울에는 두껍고 무거운 이불을 덮으셨는데 어머니 옆에 좀 누워있다 보면 무게에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아 금세 슬그머니 빠져나오곤 했었다.


내가 미국으로 시집을 올 때 내 이민가방엔 이불이 가득 들어있었다. 안 해주셔도 된다는데도 부득부득 우기시며 넣으셨는데 혼수이불은 꼭 해주고 싶어 하신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나는 처음엔 그 곱디고운 이불이 너무나도 소중했으나 해가 거듭날수록 심란해졌다. 난 그것을 한번 빨겠다고 뜯고 싶지도 않았고 꿰매는 정성도 부족한 신세대일 뿐이었다. 결국 겉은 뜯어 고이 모셔놓고, 지퍼가 달린 커버를 따로 사서 쓰다가 지금은 그것조차 안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확연히 느끼는 것은 나 역시 이불이 대한 애착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점점 이불 쇼핑이 좋은지, 좋다는 이불이 있으면 자꾸 업그레이드를 해나가게 된다. 내 이불과 자식들 이불을 깨끗이 빨아 따뜻하고 포근하게 깔아놓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어머니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셨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가 이불 꿰매시던 내 어머니의 나이를 이미 지났다.

천도, 따뜻함도 한국산보다 더 좋은 게 없다. 명품백과 한국산 최신 소재 이불을 고르라면 난 주저없이 이불이다.

<장아라 /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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