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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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노래

2022-01-08 (토)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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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모임에 나가려니 설렌다. 이 얼마만인가. 연말 모임이라야 평소에 먹던 음식에 요리 몇 가지 더하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고작인데 왜 가슴이 뛰는 걸까. 올해 마지막 모임이고 특별한 날 같아, 색다른 브로치로나마 변화를 주는데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수필 쓰는 문우들과 함께 웃고 울던 한 해를 보낸 후 맛보는 일탈을 기대했는지.

음식 접시가 치워지고 커피가 나오자 달뜬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두꺼운 선곡집을 펼쳐 놓으니 막막했다. 내가 얼마나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는 걸까. 그동안의 내 삶이 그만큼 메말랐다는 의미 아닌지. 얼른 한 곡을 고르고 옆 사람에게 넘겨야 할 텐데. 이 많은 노래 중에 아는 제목 하나 못 찾다니.

다른 이들의 노래를 듣다보니, ‘글이 곧 사람’이라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부르는 노래들이 평소에 쓴 자신의 글을 닮은 것 같았다. 즐겨 듣거나 부르는 노래로 그 사람의 취향이나 성품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면 비약일까. 어떤 가수의 노래를 여러 곡 듣다 보면 그만의 성정을 엿볼 수 있듯이. 평소에 즐겨 보는 영화나 책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이 두어 곡씩 불렀다. 내가 선곡한 마지막 곡은 패티 페이지의 ‘Changing partners’였다. 앞에서들 팝송을 부르기에 나도 그래 볼까 싶어서 무심히 고른, 대학 시절에 좋아하던 노래였다. 그런데 그 곡을 부르면서, 불현듯 그게 나의 친정아버지 노래였다는 생각이 났다.

이민 올 때 엄마 아버지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집에는 주문한 가구가 도착하지 않아서 앉을 의자 하나 없이 썰렁했다. 딸네 식구가 살게 될 집을 잠시 둘러보러 오신 아버지는 스산한 타국생활을 짐작하신 듯 별 말씀 없이 며칠 동안 뜨거운 커피만 연거푸 드셨다. 짐 정리할 때 지하실로 내려다 놓으려던 노래방 기기만 텅 빈 거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뭐냐?” 그리울 때 노래라도 우리말로 부르려고 한국서 사 온 것이라는 내 설명에, “그러냐, 그럼 어디 노래 한 곡 불러볼까?” 하셨다.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신다고? 엄마도 의외라는 얼굴이었고 남편은 코드를 꽂으면서도 긴가민가 하는 표정이었다. 평소에 모였을 때 노래를 부른 적이 없던 우리에게 아버지의 그 제안은 타국의 공기만큼이나 낯설었다.

“어떤 곡을 틀까요?” 아버지가 원하는 일본 노래는 선곡집에 들어있지 않았다. 일본 가요가 없다는 말에, 아버지 눈동자에 서운함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말보다 일본말이 더 자연스러운 시대를 사셨으니 그 시절의 정서로만 풀어낼 수 있는, 내가 짐작하지 못하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

“내가 어떤 노래 좋아하는지 너, 알아?” 가슴이 뜨끔했다. 아버지 노래를 들은 적이 있던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혼자서 듣고 부르는 데 익숙했지 다른 사람과 같이한 경우는 드물었다. 식구들이 몇 번 노래방에 다같이 가서 노래한 적은 있어도 그 기억의 공간에 아버지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본 가요가 없으면 패티 페이지 노래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셨다. 곡명은 ‘I went to your wedding’과 ‘Changing partners’. 그 노래를 부르신다고? 나도 가끔 듣던 노래여서 반가웠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 곡을 좋아하신다는 걸 나는 어찌 여태 모르고 살았을까.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이면에,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수한 내면이 어둠에 가려있었는지도 몰랐다. 가까이 살면서도 기나긴 세월 동안 나는 무엇을 보았던 걸까. 겉으로 드러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무심했던 시간. 이제 와 그 사실을 알게 된들 어쩌라고. 아버지와 나 사이에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았을지 모른다는 자각이 자잘한 가시가 되어 마음을 연신 건드렸다.

아버지는 두 곡을 차례로 불렀다. 여든이 내일모레인 은발의 노인이 중저음으로 부르는 노래는 잘 부르지는 못해도 감미로웠다. 두 번째 곡을 부를 때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에 영화 같은 로맨스가 실제로 있던 걸까 싶어 슬그머니 엄마 얼굴을 훔쳐보았다. 나는 필요 이상 감정이입이 되면서 감상에 젖었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온 내가 아버지의 노래를 언제 또 들을 수 있으려나 싶어서, 그게 아버지가 들려준 마지막 노래가 아닐까 싶어서.

우리 집에 다녀가신 지 석 달만에 아버지는 먼 길 떠나셨고, 정말로 그 노래는 아버지 생전에 부른 처음이자 마지막 노래가 되고 말았다. ‘Changing partners’. 내가 오늘 송년 모임에서 그 노래를 부른 게 우연이었을까. 마치 꿈속에서처럼,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건 ‘아버지의’ 음성으로 듣고 싶은 ‘아버지의’ 노래였으니까. 그 목소리가 얼마나 듣고 싶었던가. 천상에서 울려오는 목소리.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며 허공에서 그분을 만나고 있었던 게 아닐는지.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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