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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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것 하기

2024-12-13 (금)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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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기 위해서다. 이렇게 각 잡고 앉아 편지를 써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카드만큼은 꼭 손글씨로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쓰고 싶어 진다.

항상 들고 다니는 핸드폰으로 문자도 보내고 메일도 쓰고 웬만한 일처리를 다 하기 때문에 펜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점점 없어진 요즘이다. 안 써 버릇하면 그 기능이 퇴화되서일까 손가락도 아프고 삐뚤삐뚤 글씨가 영 아니올시다. 내 글씨가 이렇게 못생겼었나. 그래도 한 글자 한 글자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써내려 간다. 한 장 두 장 쓰다 보니 글씨가 조금 다듬어지는 것 같다. 딸아이들만 연필 잡고 쓰기 연습을 시킬 게 아니라 엄마인 나도 글씨 쓰기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니체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 새로운 것에 대한 호의를 가지라고 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손글씨 쓰기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을 더 많이 해 볼 작정이다.


생각해 보면 시도하지 않아서 그렇지 막상 하면 별 거 아닌 일들이 많다. 얼마 전에는 내 손으로 한 번도 넣어 본 적이 없던 타이어에 바람 넣기를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참 쉽고 간단한 일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바람을 넣는다는 게 되려 바람을 다 빼버려서 진땀을 뺐지만 말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남에게 도움을 청했던 일을 내 손으로 직접 해내보니 뿌듯하고 성취감이 들었다. 왜 이제껏 혼자 해 볼 생각을 못했을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들이 더 두려워지고 익숙한 것들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사물도 그러하고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취향이라는 것이 생겨서 쓰던 것들만 쓰게 되고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곤 한다. 새해에는 이를 깨고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고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내년에는 엄두가 나지 않아 미루어 두었던 두 아이들과의 장거리 여행도 시도해 보아야겠다. 따스한 봄이 오면 싱가포르에 사는 아이들 이모를 보러 가봐야겠다.

좋아하는 소설책들보다 시나 비문학책들도 도전해 보아야겠다. 새로운 책들 속에서 만날 다른 세계들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올 한 해 새롭게 발레를 배운 것처럼 새 취미나 운동 생활을 시작해 보아야겠다. 처음 친구가 발레를 같이 배우자고 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던 내가 얼마 전에는 같이 시작한 원생들과 공연도 해보고 누구보다 발레를 즐겼다. 내년에는 또 어떤 일로 설레고 벅찬 감동을 느낄지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항상 남편 손을 빌려야 했던 공구 다루기도 하나씩 배워 봐야겠다. 공구로 집안 작은 것들을 직접 가꾸고 손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얼마 전 아이 둘을 데리고 낑낑거리며 우리 집 진돗개를 산책시키는데 같은 동네에 사는 한국인 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산책길에 자주 마주치는 친구다. 자기가 시간 날 때마다 우리 개를 산책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워낙 개를 좋아하고 우리 개가 귀엽고 맘에 든다고 했다. 안 그래도 산책을 멀리까지는 가주지 못해서 까미한테 미안하던 참에 참 반가운 제안이다. 물론 나도 작게나마 사례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내년에는 나도 지금의 바운더리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먼저 말을 걸어 보고 먼저 손 내미는 용기를 가져야겠다.

이렇게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에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다짐들로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우리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눈을 돌려 보면 어떨까?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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