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세배를 한다. 세배는 큰절을 의미 한다. 일생에 가장 큰절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뉴욕에서 목회를 할 때 아내와 같이 고국의 수원에 있는 후배 김종길 목사가 시무 하는 교회를 갔다.
설교 전에 나를 간단하게 소개 한 후에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 오셨으니 다 같이 큰절을 하자 “ 며 강단 위에서 나에게 큰절을 하니 온 교인 수백 명이 같이 세배로 따라 했다. 황공하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했었다. 바로 그 후배 신앙 간증을 들어 보자.
충청도의 한 시골 교회에 부흥회가 있는데 교회당 뒷좌석에 동네 건달 몇이 소주병을 놓고 화투판을 벌리고 나이롱뽕을 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부흥사가 아무 반응이 없으니 자기들이 오히려 별일이다 싶어 강사의 설교를 듣던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단다.
그가 건달이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하루는 그가 사는 면의 면장이 동네 구장이던 그의 아버지 집에 방문을 했다. 문틈으로 듣고 있는데 이야기 중에 자녀가 몇이냐고 묻자 그의 아버지가 둘이라 대답을 했다.
조금 있다가 자기 형과 동생을 부르고 나서 자기는 빼놓았다고 한다. 자기는 어릴 때 홍역을 알아 얼굴이 박박곰보였다. 그 아들을 면장에게 숨기고 싶었나 보다. 그 때부터 완전히 비뚤어지기 시작 했단다. 자기를 낳은 아버지까지 자기를 사람 취급을 안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정신을 차려 신학교에 와서 나의 후배가 되었다.
가끔 “ 자기를 한 번 보면 누구든지 잊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나보다 더 얽은 곰보 목사 있으면 나와 보라, 여러분은 하나님이 한번 손질 했지만 나는 두 번 손질해서 만드셨다. “ 라고 넉살을 부린다.
“그때 아버지에게 불려간 형은 서울대를 나와 하늘을 나르는 KAL에 근무하고 동생은 서울대를 나와 길을 다니는 도로 공사에 다니는데 신학대를 나온 나는 하늘나라를 소개하는 목사로 근무하니 누가 제일 성공 했는가?” 교인들, “ 목사님요 !”,
“육신의 아버지는 우리를 버려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나는 흔한 말로 인덕이 참 많은 사람이다. 먼저 부모님을 잘 만났다. 건강이다. 평생에 병원을 간 적이 없다. 두 번째 스승을 잘 만났다.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선생님들이 나를 사랑해 주셨다.
세 번째 선배를 잘 만났다. 윌급 봉투를 뜯지않고 주던 분들이다. 네 번째 친구들이 좋다. 피차 기도 하는 자들이다. 다섯 번째 후배다. 나를 통해 많은 사람이 한신대, 이대 등 교수로 인도 되었고 목회자의 길로 인도 되었다고 기억해 준다. 여섯번 째 섬기던 교인이다. 새해가 되었다고 갈비 한 팩을 들고 왔다.
이들과 세배를 나누고 싶다. 아니 큰절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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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홍/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