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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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

2022-01-06 (목)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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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대사하던 분이 은퇴 후 계획을 묻는 이에게 “성당 근처로 이사해 매일 아침 일찍 성당 문을 열어놓는 성당 문지기입니다”라는 얘기를 어느 지인으로부터 들은 생각이 난다.
우리들은 흔히 큰 것, 대단하다고 느껴질 것 같은 일들, 적선을 함에도 크게, 단체에선 맨 윗자리에 앉기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저 많고, 크고, 높은 대단한 것 지향적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으나 그리 권장할 것도 못된다. 큰 것은 작은 것부터, 도랑물이 합쳐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고, 종국엔 바다로 나가지 않는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며칠 전 주치의 정기검사 진료를 받고 집으로 오다 한국 식료품점에 들렀다. 연말이라 장보러 온 고객들이 많아서인지 카트가 하나도 보이질 않아 별 수 없이 간이 손 카트를 들고 이것저것 물품(팥죽, 비지찌개, 우거지탕, 잡채, 산채나물 등)들을 넣으니 손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좀 버거웠다.
헌데 장을 보던 웬 젊은 여인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자신의 카트를 우리 부부에게 내어주며 자신은 몇 안 되는 물품이니 직접 들고 가겠다 하지 않는가.

우리의 간이 손 카트를 대신 주려 하는데도 영 고사한다. 이런 친절한 젊은 분이 있다는 생각에 너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 우리가 아무리 젊은 척, 건강한 척 해도 젊은이들 눈에는 별수 없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늙은이가 아닌가 하며 집사람과 함께 웃었다.
친절한 그분은 생각컨대, 늘 자신의 주위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이와 같은 친절과 도움을 주곤 했으리라 믿는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고 아름다운 게 아닌가 한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아마도 30년 이상은 됐을 성 싶다.
당시 펜실베이니아에 사시던 큰 누님 댁을 다녀오다 워싱턴과 버지니아의 중간 국도인 95번상에서 차 고장으로 난감해하고 있을 때 어느 반 트럭을 가진 분이 내 차를 뒤에서 자신의 차로 밀면서 가까운 차 정비소에까지 데려다줬다. 인사도 받지 않고 떠나면서 그가 하는 말,“훗날 어느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를 도와준다면 그걸로 저는 됐습니다.”
이 말은 그 이후 내 인생에 금쪽같은 교훈이 되어 왔으나 얼마나 실천했는지는 모르겠다.

옛 말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것은, 감동을 주는 말 한마디의 위력을 말하는 것이겠으나, 더 나아가 작은 친절이 이 세상을 얼마나 밝게 만드는가를 상상할 수 있겠다. 아귀다툼이 횡행하는 세상에서도 이러한 등불들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굴러가며 살맛을 느끼게 됨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줄로 생각한다.
나 스스로와 우리 모두 새해에는 작은 친절을 열심히, 더 자주, 더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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