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낙심천만산’ 봉우리마다 닿은 발길

2021-12-31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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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Mt. Deception ( 5,796’ )

‘낙심천만산’ 봉우리마다 닿은 발길

Mt. Deception에서의 남쪽 전망.

여러 해 전에 한국의 정부기관에서 한국민의 등산인구가 1600만명에 이른다고 발표했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 남가주의 한인동포들도, 그만큼의 열기는 아닐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활발히 등산활동을 하고 있다고 짐작된다. 30년 이상 이곳 남가주에서 산을 다니시는 등산선배들의 소회를 빌리자면 재미한인동포들의 등산동호인이나 산악회가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을 만큼 급증했다는 것이니, 여러 가지로 반갑고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이 남가주의 주류 주민들은 어떤 식으로 산행을 하는지 궁금하다. 대개의 대기업에는 직장단위의 산악회가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판 산악회랄 수 있을 조직으로 가장 크고 널리 알려진 것은 Sierra Club이 아닌가 싶다. 1892년에 자연을 깊이 사랑하고 이를 잘 보존키 위해 일생을 통해 헌신했던 자연보호의 선각자 John Muir등이 San Francisco에서 창립했는데, 2021년 현재 미국 전체로는 약 300만 명의 회원과 후원자들이 참여하여 여러 형태의 자연보호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단일 조직체로서는 그 규모가 실로 방대하다 하겠다.

특히 우리 LA와 Orange County에서 활동하던 회원들이 Sierra Club 최초로 지부(Chapter)를 결성키 위해, 1911년에 75명의 회원들의 연명으로 이를 청원하여 Angeles Chapter 라는 지부조직을 실현시킨 바 있다고 한다. 그로부터 110여년이 지난 현재의 Angeles Chapter에는 약 40,000명 이상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어, 전국 최대지부로 활동하고 있다는데, 회원들이 남가주의 다양한 산들을 오르며 즐기는 것을 적극 권장하여, 그들이 아름다운 산들과 친숙해지게 함으로써 산과 호수 및 동식물 등을 포함하는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사랑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의 등산활동에 직접 참고가 될 만한 것으로는 Angeles Chapter에서 시행하고 있는 HPS (Hundred Peaks Section)라는 제도를 들 수 있다. 남가주 일원의 산들을 대상으로 281개 내외의 산을 지정해 놓고, 회원들이 이들 산의 정상을 많이 올라가는 것을 장려하고 표창하는 것이다. 즉, 서로 다른 100개의 산을 등정한 회원에게는 ‘100 Peaks Emblem’을 주고, 200개의 정상을 오른 회원에게는 ’200 Peaks Bar’를 주며, 281개 내외의 List에 있는 전체의 산을 오른 회원에게는 ‘List Completion Certificate’을 수여하고, 기타 또 다른 다양한 형태로 등정을 독려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1943년에서Canada의 Ontario에서 태어나 1969년에 발표한 노래 ‘Born to be wild’를 써서 널리 알려진 Mars Bonfire라는 회원은25번이나 ‘List Completion’을 달성했다고 한는데,

아마도 언젠가 그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Sierra Club이 주동하여 그의 이름이 남가주의 어느 산엔가 헌정되게 함으로써, 불멸의 등산인으로 기리게 되어질 것으로 추측된다.

Sierra Club의 리더로 활동하면서 총 9번의 ‘Completion’을 달성한 Frank Goodykoontz라는 등산인이 2005년에 타계하자, Mt. Pallett의 남쪽에 있는 높이7558’ 의 봉우리가 Goodykoontz Peak(7558’)으로 명명되어졌었다는 사실과, 6번의 ‘Completion’을 달성했던 Dick Akawie를 기려 1990년에 종전의 Buckhorn Peak(7283’)의 명칭을 Akawie Peak으로 변경한 사실에 근거한 짐작이다.

이 밖에도 시에라클럽의 등산리더로 크게 활약한 것을 계기로 그 이름이 남가주 일원의 산에 헌정된 분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Angeles Chapter의 HPS제도의 장점으로는 개인에게는 어떤 목표를 정하고 그를 달성키 위해 등산을 다양하게 열심히 할 수 있게 하는 동인이 될 수 있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됨은 물론 육신의 단련이나 정신의 수양을 통해 더 큰 보람도 느낄 수 있게 되며, 많은 산들을 회원들이 고루 찾게 되어 짐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보다 많은 산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게 되고, 더 많은 산들과 두루두루 가까이 지내게 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실제로 산을 다니다 보면 아주 편벽된 곳에 있는 평범한 봉우리에도 사람들의 발자취가 있어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HPS제도가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다양하게 이끌기 때문이겠다는 감탄을 하곤 한다.

참고로 Sierra Club의 Angeles Chapter에서 시행하는 HPS제도에 의해, 창설 이래로 2021년 12월까지, 표창된 회원들의 숫자를 알아본다.


100 Peaks Emblem 수상자 : 1218명

200 Peaks Bar 수상자 : 509명

Completion 1회 수상자 : 331명 (한국인 7명)

Completion 5회 수상자 : 16명

Completion 10회 수상자 : 3명

Completion 12 ~ 15회 수상자 : 2명

Completion 16 ~ 25회 수상자 : 1명

남가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미주한국인 산악회들에서도 Sierra Club의 Angeles Chapter의 HPS제도 등을 참고하여, 남가주지역에서의 등산활동의 외연을 더욱 넓혀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Angeles Chapter의 HPS에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산을 찾을 이유가 거의 없을 듯한, 또 웬만한 지도에는 올라있지도 않은 산으로 여러분을 안내코자 한다.

해발고도가 5796‘이며, ’사기, 허위, 속임수‘ 등의 의미가 있는 ’Deception‘ Peak 이 그 이름인데, 이렇듯 유별난 이름이 지어진 배경을 알아내진 못했는데, 재미삼아 추정이라도 해 보려면, 이 산과 가장 가까운 산으로 동쪽 0.5마일허에 있는 ‘Mt. Disappointment’란 역시 파격적 이름의 산과 연관해서 단서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1874년 옛날에 USGS의 국토측량원들이 Oxnard쪽의 Santa Susana 산맥에서 이곳 LA쪽 산을 관측할 때, 이 부근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관측되는 한 산을 정하여, 이 곳에 새로운 측량점을 세우기로 하고 필요한 장비와 물품들을 챙겨 어렵게 이 산의 정상에 올랐단다. 자동차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었고, 들고 나는 도로도 전혀 없을 시절이니 그 고생이 대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산의 정상에 올라보니 바로 옆 남쪽에 있는 산이 더 높은 게 아닌가! 다시 모든 것을 바로 옆의 산인 San Gabriel Peak으로 옮겨야만 했단다. 그래서 그들이 원래 가장 높다고 믿었던 산에 붙인 이름이 Mt. Disappointment(낙심천만산)이란다.

Santa Susana 산맥 쪽에서 이곳을 관측할 때 이 두 Mt. Deception 과 Disappointment 가 거의 일렬로 겹쳐있어, 하나의 산으로 관측되었는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앞에 조금 낮은 산이 하나 더 있고, 옆에는 조금 더 높은 San Gabriel Peak 이 하나 더 있어, ‘속았다’ ‘실망했다’는 당시의 허탈한 느낌을 그대로 두 개의 산에 붙인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산으로 보여서 정상에 올랐더니, 정상부위가 동서로 길쭉한 능선같은 모양이라 ‘산같지 않은 산‘ 이라는 의미를 담은 말일까?

이름이야 어쨌거나, 이 Mt. Deception(5796‘=1767m)은 가주에서는 2,047번째 높이의 산이라 하는데, 한국과 비교하면 남한 제2봉인 지리산(1915m)과 제3봉인 설악산(1708m)의 사이가 되니, 높이로만 따지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가주의 산들을 두루 오르는 일은 참으로 무궁하고 무진하다고 하겠다.

이 산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이 산의 주변 가까이로 등산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그만 그만한 산들이 밀집되어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Mt. Deception의 정상에 오르면 이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다 볼 수 있다.

즉, Wilson(5710’), Harvard(5440’), Occidental(5732’), Markham(5742’), Lowe(5603), San Gabriel(6161’), Disappointment(5960’), Echo(3210’) 등 인데, 이 중에서 Harvard는 사유지라서, Echo는 고도가 5000’가 안되는 낮은 산이라서 HPS에는 올라있지 않다.

Mt. Deception은 산행거리가 왕복 4.5마일 내외에, 순등반고도는 1100’으로, 왕복 3~4 시간이면 되므로 등산경험이 많지 않은 분이라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며,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은 경우에도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LA에서 꽤 가까운 곳이고, 2번 도로를 오고 가면서 우리 남가주의 큰 보배랄 수 있을 San Gabriel 산맥의 험준한 산세의 일단을 잘 볼 수가 있어, 이러한 관점에서도 이 산의 등산은 또 부가적인 의미가 있다.

가는 길

Freeway 210에서 Highway 2 East의 Exit으로 나와 계속 동쪽으로 14마일을 달리면 Red Box Station 이라고 불리는 휴게소 겸 주차장이 오른쪽으로 나온다. Hwy의 길변에 때때로 세워져 있는 Mile-Marker로는 38.62 지점이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Mt. Wilson Road를 따라 0.4마일을 가면,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바짝 휘어져 오르는 길인데 50m쯤을 가면 차량통제 게이트가 있다. 여기서 차를 세우고 오른쪽의 공터에 주차한다.

등산코스

산행을 할 수 있는 길이 2개이다. 하나는 구불구불 올라가는 포장도로인 Mt. Disappointment Fire Road(2N52)이고, 다른 하나는 주차된 곳에서 20m 쯤 뒤로 내려가, 2N52 진입부 중간의 왼쪽에서 시작되어 숲속으로 이어지는 San Gabriel Peak Trail을 따라 가는 것이다.

두 개의 루트가 각기 장단점이 있다. 포장도로는 다소 밋밋하고 멀게 돌아가는 대신에 인근의 산들과 2번 도로를 잘 조감할 수 있어 좋고, 숲길은 짧은 구간에서만 제한적인 전망이 있을 뿐이지만, 거리가 조금 짧으면서 포근한 그늘이 있는 Oak Tree 숲길이라 걷기에 쾌적하다.

오늘 우리는 이 두 길을 다 섭렵키 위해, 숲길로 올라갔다가 포장도로로 하산하는 1석2조의 요령으로 산행키로 한다.

San Gabriel Peak Trail은 초반 1.3마일 구간이 주로 Oak 숲속으로 나 있는 구간인데 우리는 이 구간만을 이용하면 된다. 처음에는 다소 가파르게 올라가나 곧 걷기에 편하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완만한 오름길이 된다. 이 길은 1988년에 Pasadena에 있는 JPL(Jet Propulsion Laboratory의 이니셜로서 Caltech이 주관하는 NASA의 큰 연구소)의 산악회가 주관하여 조성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우주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등산로로는 지구상에서는 유일무이일 것이겠다.

20여분을 오르다보면 가끔씩 Manzanita들이 Oak Tree들 사이사이에 적잖이 섞여 있는 수목지대가 나온다. 좀 더 가면 왼편으로, 창날같이 예리한 잎들로 누구도 접근치 못하게 둘러싼 가운데, 때가 되면 우람한 꽃대를 하늘높이 세우고, 대추 크기의 씨방울을 수백개나 다닥다닥 달게 되는 Chaparral Yucca(“Our Lord’s Candle”)군락지에 이른다. 척박한 산비탈에서 묵묵히 자라나다가, 6년동안 아무도 모르게 부지런히 뿌리쪽에 비축해둔 생명의 정수를, 동물이 사정하듯 최후의 한방울까지 단 몇달만에 하늘높이 용출시켜, 눈부시게 풍성한 꽃과 씨를 맺고는, 미련없이 시들어버리는 그들의 최후는 참으로 장렬하고도 처연하다. 아마도 이것이 뭇 생명체들에게 부여된 삶과 죽음의 원형질이며 순리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식물들의 삶이 꽃 피우고 열매 맺는 데에만 그 존재이유가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내 삶의 의미와 본질도 여기에 대입하여 좌표를 설정해 봄직한 일인데, 그렇게 되면 지금 내가 맞이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마땅히 버려야 할 욕심이거나, 무조건 감사해야 할 보너스라는 결론이 나올 법하다.

잠시, 1000년도 넘는 옛 시절을 살았던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낙천;772~846)의 싯구를 새겨 본다.

蝸牛角上爭何事 (와우각상쟁하사)

石火光中寄此身 (석화광중기차신)

隨富隨貧且歡樂 (수부수빈차환락)

不開口笑是癡人 (불개구소시치인)

달팽이 뿔같은 이 작은 세상에서 무엇을 가지고 다툰단 말인가

부싯돌에서 튕겨나는 불꽃처럼 짧은 찰나를 사는 것이 이 몸이거니

넉넉하든 쪼들리든 나름대로 어찌 즐겁게 살지 않을까 보냐

입 벌려 환히 웃을 줄 모른다면 그야말로 어리석은 존재가 되리

이 같은 옛 시인의 소회를 보더라도, 지금 이렇게 주어진 오늘의 내 삶을 더욱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윽고 숲길이 다하고 포장도로 2N52를 만난다. 1.3마일을 온 것이다. 여기서 Mt. Disappointment와 San Gabriel Peak을 가려면 왼쪽으로 가야하지만 우리는 오른쪽으로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가야 한다.

대략 0.6마일쯤을 가면 왼쪽에 2N52의 Mile-marker 2.00 으로 표시된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60m쯤을 더 가면 길이 오른쪽으로 굽어지는데, 이 지점의 길 왼쪽에 정면(서쪽)의 Mt. Deception의 봉우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확연히 보인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가파른 경사면을 포함하여 0.3마일 정도의 짧은 거리이다.

정상의 모습은 동서로 길쭉한 능선을 이룬 형태로서 특별히 도드라진 봉우리가 없어, 동서남북의 전망을 두루 보려면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고 있는 관목들을 비껴 약간씩 빈자리로 이동해야 하는데, 나이가 많은 나무로는 Mountain Mahogany들이 두드러지고, Manzanita와 Buckthorn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거대한 밤송이를 연상시키는 Chaparral Yucca와 붉게 마른 꽃송이를 다닥다닥 달고있는 Buckwheat 들은 큼직하게 둥근 덩이를 이루어 산등성이를 마치 각색의 모자이크처럼 드문드문 메꾸고 있다.

한가지 주의할 것은 산불이 난 후에 성하다는 Poodle-Dog-Bush이다. 한국의 농촌에서 보던 참깨의 줄기를 닮은, 사람의 키보다 작거나 비슷한 높이로 자라나는 식물로, 봄철에 독특하게 진한 향기를 내는 예쁜 보랏빛 꽃을 피우는데, 피부가 민감한 사람은 직접 접촉에 의해 가려움증이 유발될 수 있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동쪽으로는 Mt. Disappointment, San Gabriel Peak, Mt. Markham이 가깝고, 서쪽으로는 Bear Canyon과 그 주변의 숱한 낮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Mt. Lowe, Mt. Echo를 품은 능선이 나지막하게 흘러내리고, 북쪽으로는 Josephine, Strawberry, Lawlor 들의 봉우리가 2번 도로를 허리띠를 두른듯한 모습으로 벌려있다.

주변의 많은 산들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어 경이롭고 신선하다. 정상에서 잠시 쉬며 전망을 즐기고, 하산시에는 아까 올라온 포장도로 2N52까지 그대로 돌아 나온 후에, 왼쪽(북쪽)으로 내리막인 넓은 도로를 따라가도록 한다. 구불구불 굽어지는 그러나 전망이 좋은 2N52 도로를 따라 약 2마일을 내려오면 어느 덧 주차지점에 이르게 된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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