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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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다 똥 된다

2021-12-30 (목)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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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끼다 보면 그게 상하거나 쓸 수 없게 되므로 때에 맞춰 적당히 쓰는 것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은 이들에겐 정리해야 할 일이 많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한 트럭 쯤 되는 살림을 끝없이 정리하며 짜증이 났다. 본인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이지만 남은 자손들에게는 마구 버리기 찝찝한 애물단지 쓰레기가 된다. 몇개 안되는 금은 보화와 돈 되는 것들에 대한 정리는 쉽지만, 첫 월급때 사드린 빨간 내복, 몇번 안입은 한복, 신발과 구두, 유행 지난 그릇, 사진 뭉텅이, 아침마다 모셔가는 남자 약장수 효도에 녹아서 산 수많은 건강식품, 효능 좋다는 가짜약, 자석 이불들을 며느리는 머뭇거리고, 그래도 난 딸이라서 용감하게 쓰레기 봉투 수십개에 담아 버렸다. 몇 년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옛날 자개장 셋트와 방안에 가득찬 아무도 필요없는 쓰레기 정리를 역시나 딸들이 우짜면 좋을꼬 하면서 끝없이 버렸다.

그리고 이번엔 내 차례였다. 미국에 오면 주말마다 파티에 가는 줄 알고 예쁜 드레스, 한복을 맞추고, 남편의 정장양복, 넥타이, 명품구두, 미제 가전 제품이 집집마다 가득할거라는 기대에 신나서, 그 좋은 한국제품을 다 버리고, 쓸모없는 쓰레기가 될 짐을 가득실고 태평양을 건너와, 장례식 결혼식에만 입는 정장 몇벌만 남기고 몇 년 뒤에 여기 와서 다버렸다.

나는 계획을 세우고 정리정돈 하기를 좋아하고 잘 하는 편이다. 그래도 내가 떠나면 남은 이들도 똑같이 아쉬워하며 한숨 쉬며 쓰레기로 버릴걸 알면서도 좀처럼 살림살이가 줄어들지 않는다. 이건 언젠가 꼭 쓸거라며 두었다가 쓸모없어진 것들, 묵직한 도자기 그릇이 좋다는 그 친구에게 진작에 주었으면 좋아했을텐데 괜시리 아까워서 못준 그릇들. 동생네가 큰맘 먹고 선물해 준 폭신한 잠바는 북극 오로라 보러갈 때 입는다지만 너무 따뜻해서 옷걸이에 2년 걸려있다가 선반에 3년째 묵혀있다.


아끼다 똥 되는 것은 물건 뿐만이 아니다. 아끼지 말고 나눠야 할 것도 참 많다 내가 좋은 건 남도 좋아하는 것이니 아끼지 말아야겠다. 우선 내가 받았던 고맙고 푸근했던 일들을 표현 못하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때를 놓치고 지난 뒤에는 너무 작은 것이어서, 새삼 표현하기 민망해서 넘어간 적이 많다. 특히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당연한듯이 받기만하고 그냥 당연하게 여겼던 고마움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는 나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 준 올케, 무릎에 좋다며 이것저것 챙겨준 친구들, 서툰 살림살이를 하려고 세탁기를 돌리는 남편을 보며, 이제야 아 그때 그 친구가 몸과 마음이 힘들고 아픈 걸 알면서도 솜씨좋은 내가 만든 반찬을 한번이라도 더 갖다줄 걸하는 후회와, 운전 좋아하는 내가 바람쐬러 가고 싶어하는 친구에게 귀찮다고 모른척 하던 나는 그것 봐 아끼다 똥 됐잖아 하면서 후회한다.

올해 들어 내 마음에 새겨진 글은 신문에서 알게 된 (Buy Nothing 아무 것도 사지 말자)이고 칼럼에 실린 대로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사지 않는것이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 그게 무엇이든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쓰고 또 쓰는 것을 내 인생의 계획으로 삼으려 한다.
올해의 단어는 코로나19와 백신이라 한다. 그래도 나는 코로나도 이겨내고 3차 백신까지 다맞았으니 마스크 쓰고 안전하게 움직여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아끼다 똥 되기전에 나눠주고 잘 쓰는 것이다.
내 집을 물건으로 채우려 하지 말고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무엇이든 아끼다 똥 되지 말고 필요한 이에게 나누고 편안한 마음으로 올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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