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한국정부의 가용보유 외환은 39억달러 밖에 없었다. IMF, IBRD, ADF 등에서 583억달러를 긴급 빌려오는 대가는 혹독했다. 외국인 주식취득한도를 26%에서 50%로 늘렸다가 한달만에 100%로 개방했다. 국내 콜금리를 25%로 2배 인상해야 했다. 그러자 긴급 수혈자금이 들어오자마자 다국적 기업들은 달러를 빼내 가버렸다. 원 달러 환율은 1,800원대까지 치솟았다. 나라가 아니었다.
“나는 협상하기 위해서 왔다.”1997년 12월 3일 미셀 캉드쉬 IMF 총재의 한국입국 일성이다. 대통령은 물론 경제부처 공무원은 캉드쉬 앞에서 벌벌 떨었다. 한일합방때도 이랬을 것 같았다. 약소국가의 비애이자 굴욕의 생생한 24년전의 기록들이다.
1888년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는 ‘대한제국 주미공사는 우선 청국공사관에 찾아와 그들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라는 주지를 무시하고 직접 미 대통령을 만나 고종황제의 국시를 전달함으로써 당당한 ‘자주외교’를 펼쳤다. 바로 그 자리 맨 앞에는 참찬관 이완용이 서 있었다. 그 이완용이 바로 나라를 팔았던 사람이자 ‘매국노’의 대명사가 된 사람이다. ‘자주와 매국’이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정치인들의 운명이 ‘한순간’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세계 한국 이민사회 어느 곳이나 동포신문에는 한국인 2세 또는 한국계의 해당정부 진출에 대한 기사가 종종 올라 온다. 필자는 그럴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자랑스럽다. 축하도 받고 격려도 한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성취 그 이상일 것이라는 필자의 선망이 담겨 있다.
2020년 12월에 있었던 제 117대 미 의회 선거에서 4명의 한국계 의원이 탄생했다. 영옥, 순자, 은주라는 한국정서의 이름을 가진 여성 의원과 앤디 김이 그들이다. 비록 소속 당은 다르지만 이들 3명이 마치 언니 동생처럼 연대해서 미국 내 한국 동포사회 이익을 위해 힘을 합치고 고국인 한국과 소통하는 역할을 하겠다며 단합을 과시한 것은 미주 한인 이민 역사의 쾌거였다.
그런데, 지난 7일 영옥이라고 불리는 영 김 의원은 같은 공화당 소속 은주언니와 함께 35명의 공화당 의원들의 맨 앞에 서서 한국전 ‘종전선언 반대서한’을 미 정부에 보냈다고 밝혔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발표한 ‘2021년 4분기 국민 평화·통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종전선언에 대해 긍정하는 답변이 67.2%(매우 필요 38.3%·어느 정도 필요 28.9%),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27.6%(전혀 11.5%·별로 16.1%)로 조사됐다. 한국내의 일반여론도 거의 70%가 한반도에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바란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거의 절대적이다.
미국에 사는 동포들 중에는 조국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강국이지만 분단 70년이 되었는데도 통일은 커녕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전 종전’ 조차도 못하고 있는 현실을 통탄해 하면서 생면부지의 하원의원들을 물어물어 찾아다니면서 ‘한반도 평화법안(HR3446)’을 하원에 상정하고 그 동의를 구하고자 생업마저 뒤로 하고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현재(12/28/21)까지 34명의 동의를 받고 있다. 그 법안에는 북의 이산가족들도 얼마남지 않은 생전에 만나게 할 내용까지도 있다. 이런 운동을 모르는 한인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민 와서 말똥거리는 아이 손잡고 미국학교에 입학시켰던 ‘그날’을 이민자 부모들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 아이가 이곳에서 잘 배워서 딱히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일은 아니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을 세우는 건강한 한국인의 후세가 되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영 김 의원이 속한 선거구민의 34%가 아시안이라고 한다. 특히 한인들의 도움 없이는 이번에 당선이 불가능했다 라고 말한다. 꼭 대가를 바라서는 아니다. 오히려 정치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해불가다.
이번 일은 마치 머리 좋은 자식 하나를 위해서 다른 형제들을 희생시켜가며 온힘을 다해서 뒷바라지 했던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 신파극의 주인공같은 행동이다. 그래서 필자는 문득 그의 부모가 가장 먼저 떠 올랐다. 그리고 앞으 로 2세들의 주류진출’에 대해서 한인커뮤니티에 뭐라고 하면서 후원하고 독려할까 마땅한 명분을 못찾겠다.
비슷한 트라우마를 한 번 일깨워 드리겠다. 한국계 최초의 미 연방하원 김창준 의원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조국을 위해 남겨 놓은것은 빈약하다 못해 거의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이름 정도뿐이다. 오히려 그의 부모세대가 겪었을 반이민법, 이민 축소법, 사회복지 축소법을 발의 또는 동의하여 한인사회의 공분을 샀던 안타까운 기록만 있을 뿐이다. 미국사회는 각자의 정체성을 지켜가면서 전체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가치와 행동을 존중한다. 물론 그도 전략없이 그런 일을 했겠는가만 만약 유태계 의원이나 일본계 의원이라면 지금처럼 그런 일의 맨 앞에 서서 했겠는가는 몹시 궁금하다.
그래 이것 저것 모두 접고 연방하원 생활 1년의 자존심을 존중한다고 치자.
그러나 ‘인류의 평화’와 ‘한민족의 통일’을 인생의 가치로 알고 살아가고 있는 어느 원로 이민자의 자존심도 결코 작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갑자기 신세대 트롯 가요 중에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 심정을 노래한 게 떠오른다.
‘근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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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민주평통워싱턴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