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했던 지난 2년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책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나온 한 구절이 명백한 사실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는 “인간은 불멸이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이며, 나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베리아 옴스크 감옥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기록문학으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자 수기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소설 형식으로 고랸치코프라는 인물을 화자로 내세웠지만,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그는 온갖 더러운 오물과 그득한 먼지, 벼룩과 바퀴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감옥에서의 삶에 적응해 살아가는 죄수들의 모습을 그렸다.
참혹한 상황에서도 끝내 적응하는 인간의 모습은 빅터 프랭클 박사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나타난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사람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동료 몸 위에 엎어져 자는가 하면, 이를 단 한 번도 닦지 못한 수감자들 대부분 잇몸 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수감자들은 극한의 공포와 절망을 딛고 생존하기 위해 현실에 적응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빅터 프랭클은 옳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멀쩡하던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는 끔찍한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상황에도 어느덧 익숙해져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존재, 그게 인간이다.
2019년 12월31일 중국 우한에서 원인 불명 폐렴으로 코로나19가 최초로 보고된 지 만 2년이 흘렀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인류의 삶을 들었다 놨다 한다. 27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2억8,000만여명, 사망자는 540만명을 넘어섰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한 이후에는 전 세계 신규 확진자 수가 한 달 만에 34%나 증가하며 겨울철 코로나19 대유행이 현실화됐다. 미국에서는 27일 하루에만 55만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와중에도 사람들은 일을 하고, 식사를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연휴에는 여행길에 오른다.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사실만 가려놓고 보면 팬데믹 이전의 삶과 현재의 삶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코로나19 시기에 적합한 생존 방식에 순응하고 적응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불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죽음의 수용소’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언제까지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데서 깊은 절망을 느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provisional existence)’이 수감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는데, 코로나19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현재의 ‘일시적인 삶’의 종착지를 모른다는 사실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사람들은 코로나가 종식 되기만을 간절히 기원하며 새해맞이 준비를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내년에도 혹시…’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코로나19 이후의 삶은 미지의 영역이어서 섣불리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다.
프랭클 박사는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하면 시련을 견딜 수 있다고 실제 수감자들의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그는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의미를 찾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죽음의 수용소’를 출판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자유 중 가장 마지막 자유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 뿐”이라고 말했다.
2021년의 끝자락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던져준 삶의 의미에 대해 고심해 봐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도처에 널려있다. 우리는 여전히 안전지대에 놓여있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코로나19 시기에도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적응할 수 있는 불멸의 인간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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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