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동네 떠나 갈듯/울어 제치는 소리/바로 오늘이/네가 세상에/태어난/그날이란다.
이 노래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은근히 좋아했던 유행가였다. 부르면 왠지 경쾌하고 특히 노래가사가 새 생명의 첫 울음 소리에 모든 이가 환호하고 기뻐하며 대 자연도 춤추며, 표현할 수 없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폭발하는 식으로 말한 노랫말 같았다.
한 생명이 창조되었다는 경이로움은 누가 뭐라해도 신비 그 자체이다.
그런데 가는 세월에 나는 꼬부라진 할머니가 되었다. 요즘 세상은 백세 시대라하여 젊은이들의 결혼 적령기가 눈에 띄게 늦어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란 다 때가 있는 것을, 젊은이들이 무작정 걱정하지 말라는 자식들의말에 부모된 입장에선 앉으나 서나 저절로 걱정거리다.
내게도 걱정거리 아들 둘이 있어 해마다 돌아오는 그 애들 생일은 축하의 날이 아니라 부모로서는 걱정의 날로 되어 버렸다 “애들아 엄마 나이먹는 것은 괜찮은데 너희들 나이 먹는 것은 걱정이구나” 했다.
힘을다해 붙잡던지, 성능좋은 풀로 꼭꼭 붙여놓고싶은 그 많은 시간들을 속절없이 보내다보니 어찌하여 작은아이가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옛날 그 옛날에는 오빠를 두고 여동생이 먼저 가는 일은 있어도 형을 두고 동생이 먼저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좀 그랬다. 그러나 요즘은 도대체 용도를 모르면서도 여자들의 바지에 남자 바지처럼 앞에 지퍼가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입는 세상이고 귀고리에, 다른 장신구에, 그리고 많은 돈을 주고 남자들도 피부관리하는, 변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닌 세상으로 뒤 바뀌었는데 형보다 동생이 먼저가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하면서 옆에서 위로하시는 분도 계셨다.
또 그저 하나라도 어서 결혼시키는 게 장땡이라고 웃으시며 축하해 주는 분도 계셨다.
그리고 한 이년 뒤 큰 아이도 꽉찬 사십 넘기기 직전 하느님의 안배하심으로 좋은 짝을 만나게 해 주셔서 무척 좋아하며 설레었는데 좋아하는 것만큼 코비드 때문에 먹구름 속에서 헤맸다. 그러다 그냥 우리 가족은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지극히 제한된 인원 속에 천주교회의 예식대로 혼배성사를 받고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부모로서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큰 아들이 은총속에 가정을 이루어 지내던 중 지난해 12월에 세상이 떠나갈듯 울어대며 우리 부부의 장손이 태어났다. 그런데 그 울음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이 태어났다 그 놈에 코비드 때문에….
나중에 들어보니 의사와 간호사가 남자답게 아주 크게 울었다는 이야기를 며느리를 통해 들었다. 의사와 간호사도 코비드때문에 이 암울한 시대에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경이로움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들렸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 소설을 써가며 더듬었다.
그런데 오늘이 그 손주가 첫 번째 맞이하는 생일이다. 성탄 보다 조금 먼저 태어나 나는 가끔 농담을 한다. 우리 손주는 예수님형이라고.
바로 오늘이 너의 첫 생일! 그때 그 시절 그 유행가를 흥겹게 가사도 잘 모르면서 식구중 누가 들을까봐 모기만한 소리로 그냥 흥얼거렸다.
작은 아들의 큰 손주도 성탄 전이 생일이고 그애 동생인 작은 손주는 지난 봄 부활주일 첫 울음을 터트렸다. 꽃피는 봄에는 또 돌잔치를 기다린다.
손주들아! 너희들도 이 세상 살면서 울음 소리보다 더 아주 크게 웃으면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좋아해야 되요. 알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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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 베데스다,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