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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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의 문화자원

2021-12-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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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살면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세계 각 곳에서 친지와 친구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친구들이 뉴욕을 방문하면 공항 픽업에서부터 며칠간의 숙식 제공은 물론 관광 안내까지 해주고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 일체를 책임져야했다.

친구들이 오면 다음 날로 7번 지하철을 타고 무조건 맨해튼에 나가 쌍둥이빌딩부터 올라가고, 자유의 여신상, 월 스트릿, 차이나타운, 브루클린 브릿지와 사우스 스트릿 시포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핍스 애비뉴의 유명 백화점들, 록펠러센터, UN본부, 센트럴 팍 등을 여러 날에 걸쳐 구경시켜주었다. 또 컬럼비아대학 캠퍼스와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메트로폴리탄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무렵, 타임스퀘어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뮤지컬 극장들의 간판을 구경시켜주면서 놀란 표정의 친구들을 보고 뉴욕에 사는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정말 그 때는 친지, 친구들이 오면 피곤하거나 힘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이젠 한국도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친지와 친구들도 해외여행에 익숙해져서 뉴욕을 방문하면 알아서 맨해튼 호텔에 투숙하고, 미리 뉴욕의 관광회사와 연결하거나 스스로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 수준 높은 관광을 하고 돌아간다. 웬만한 것을 구경시켜줘도 친구들의 눈높이를 맞추어주기 힘들다.

그 대신 친구들이 찾는 볼거리도 달라졌다. 남들 다 가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어떤 영화에 나오는 조그만 디저트 카페를 굳이 찾아가고, 센트럴 팍에 ‘Imagination’이라고 땅바닥에 새긴 존 레논을 애도하는 스트로베리 필즈 기념비를 보러 간다. 그렇게 주제와 스토리가 있는 의미 있는 여행을 즐긴다.

그런데 그렇게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친구들도 한인 이민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서린 코리아타운을 둘러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그들이 코리아타운의 역사와 스토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코리아타운 한인들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 또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 “아! 그랬구나.”하고 비로소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그 작품이 외국 비평가들의 호평이나 국제적인 상이라도 받으면 그제야 한인 이민 스토리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세계적인 이야기라며 감탄한다.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가 한 예이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세계 각지의 코리아타운에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적지와 관련 이야기들도 아직 많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많은 장소와 공간들 그리고 인물들에 관한 기록과 영상 및 문헌자료들이 남아있다. 코리아타운의 문화자원은 스토리로 엮어진 한인들의 삶의 역사와 그 흔적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스토리를 어떻게 엮어내어 지속적인 관심과 감탄을 불러일으키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유적과 유물, 장소와 공간들 그리고 올드 타이머들의 구술들을 하루 빨리 기록하고 정리하고 보존해야한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러한 문화자원은 상당량이 사라질 것이다. 세계 각지의 코리아타운의 문화자원에 대한 기록, 정리 및 보존은 각 지역 한인회가 중심이 되어 현지 한인들이 담당해야한다. 현지 한인들이 그들의 역사를 문화자원으로 여기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줄 리 만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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