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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가 만난 사람 12 - 미 대통령 경호실 총책임자, 데이빗 조

2021-12-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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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최상의 경호원이 되고자 했다”

▶ “한인의 능동성과 획기적 아이디어 인정 받은 듯”

제프가 만난 사람 12 - 미 대통령 경호실 총책임자, 데이빗 조

인터뷰 후 백악관 인근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제프 안과 데이빗 조 미 대통령 경호 책임자(오른쪽).

# 힘들게 성사된 인터뷰의 이유
12월 17일 금요일 오후 1시, 이달 말 퇴임을 앞둔 데이빗 조(David Cho) 대통령 경호실 총책임자(SAIC: Special Agent in Charge of the Presidential Protective Division)를 힘들게 인터뷰했다. 수십 통의 이메일이 경호실과 오고 가는 사이 보안과 코로나 19 팬데믹을 이유로 서류나 줌(zoom) 인터뷰로 대체하자는 경호실 요구에도 면담 인터뷰를 고집해서 일궈낸 인터뷰였다.

백악관 바로 옆의 아이젠하워 행정동(Eisenhower Executive Office Building) 건물 앞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그의 빡빡한 일정 탓에 30분이나 늦게 시작되었다. 대통령 경호실 커뮤니케이션과에 근무하는 스티븐 코펙 씨와 인터뷰에 대한 조율을 맞추고 있는 사이 딱 벌어진 어깨를 한 데이빗 조 차장이 손을 내밀며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며 한국어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보안을 위하여 그 이후 모든 대화는 코펙 경호원이 배석한 자리에서 영어로만 진행되었다.

1995년 시작한 26년의 경호실 근무 그리고 한인으로서 대통령 경호실의 경호 담당 최고위직에 오른 그는 공직에 있는 동안 일절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으며 퇴임을 앞두고 진행된 이번 첫 언론 인터뷰를 미주 한국일보와 갖게 되었다. 
미 주류 언론보다 다소 변방(marginalize)에 있는 한국 언론사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한인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한다”고 답했다. 인터뷰는 2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지만 보안을 위해 민감한 내용들은 거부당했다. 


# 6번의 진급시마다 최초의 아시안 호칭
직함에서 보듯 그는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직계가족에 필요한 사복 경호요원들 뿐만 아니라 백악관과 부통령 관저 경비에 필수인 정복 경호관들(Secret Service Uniform Division) 모두를 직접 지휘 감독하며 그 숫자가 1,000명에 이른다고 답했다. 
미적분에서 가장 빠른 길은 직선이 아닌 파선(cycloid)이듯 그는 한자리씩 승진을 할 때마다 급속으로 승진하여 총 6번의 진급을 거쳤으며 그때마다 첫 한인 또는 첫 아시안이라는 호칭이 따랐다고 말했다. 일반 공무원으로서 가능한 최고 위치에 올랐다고 답했는데 그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그의 직책은 일반 연방 공무원(Government Service) 직으로 치자면 S.E.S(Senior Executive Service) 격이며 군에서는 장성(Flag Officer)에 준하는 자리이다. 그에게 더 이상 오를 자리는 경호실장과 부 실장 자리인데 모두 대통령 임명직(Presidential Appointment)이며 경호원 정년이 57살이라서 은퇴해야 한다며 웃었다. 
어느 직장에서나 보직이 중요하다. 같은 별도 펜타곤의 별과 지방의 별이 다르듯 같은 경호원이라도 대통령 수행 경호원의 입지가 다르다. 그는 트럼프,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을 밀착 수행 경호하는 최측근 경호원이기도 했다. 우선 그의 성장 과정과 교육에 대하여 질문했다.
 
# 부모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아들
그는 3살 반 때 이민 왔으며 어렵게 식당업을 운영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던 과정을 설명하며 부모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항상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천주교 사립학교에서 교육받고 부모님이 늘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서 자신의 인생철학을 배웠다고 말했다. 
일리노이드 대학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화학공업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펜싱 선수로 1992년 바르셀로나 미국 올림픽 팀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었지만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인해서 선수로 뛰지는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사실 펜싱이라는 운동이 유럽 귀족들이 즐기던 운동이기에 한인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힘들게 자랐다는 내용과 잘 어울리지 않아 재차 물어보았다. 그는 부모님들이 부담되는 비용을 감당했으며 본인 역시 펜싱이라는 스포츠에서 노력한 결실이 세월이 흐른 후 백악관에서 열매를 맺은 듯 하다고 답했다. 

그의 말과 태도에서 신념과 품위가 보였는데 그것은 고관들을 오랫동안 경호한 경력과 펜싱으로 쌓아온 오랜 내공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유추되었다. 한국의 양반집이나 서양의 귀족(현 미국 상류사회) 사회에서 우선시 하는 품위라는 가치는 삶의 환경 그리고 경험 등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대통령 수행 경호원들은 훈련과 교육에서 쌓은 실력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식구들을 지척에서 경호하기 때문에 몸에서 배어나는 품위 또한 갖추고 있어야한다. 그래서인지 배석한 두 사람 모두에게 대통령 경호실은 인물을 제일 중요시 하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하자 좌석 분위기에 다소 화기가 돌았다.
 
# 대통령 경호실 조직
대학을 마친 후 1995년 조지아 주, 그렌코에 위치한 경호실 아카데미(Secret Service Academy)를 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의회 사무실에 배치되었다. 그 뒤 시카고 필드 오피스에서 2년 근무 후 경호실 아카데미 교관으로 재직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시에 백악관에 입성했다.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대통령 경호실은 사실 Secret Service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서인 동시에 얼굴 마담 같은 위치다. 상식이지만 경호원들의 절대 우선 과제는 범인을 제압하는 것이 아닌 대통령 보호다. 따라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직업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경호처가 청와대 내부 조직인 반면 미국 대통령 경호실은 원래 재무부 산하 조직이었으며(재무부는 백악관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정부 부처) 현재도 Secret Service의 중추 역할은 화폐 위조 방지와 그에 따른 범죄 소탕이다. 
따라서 Secret Service는 전국에 26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9-11 후 정부 재편에 따라 2003년에 국토안보부(Homeland Security)로 이관됐다. 

# 그의 멘토는
그는 얼마 전 국토안보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훌륭히 마무리 한 점을 인정받아 최고 훈장인 ‘Exceptional Service Gold Metal’을 수여 받았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과정을 물어보니, 세 번의 무릎부상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 하나, 그리고 한인이기 때문에 또는 한인이라서 라는 이름표를 달지 않기 위해 남보다 2배, 3배로 열심히 일했던 정신적인 부담을 토로했다. 그러한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 직업 윤리관이 그를 성공의 가도에 올려놓은 듯하다. 

그는 항상 자신이 최상의 경호원이 되고자 했고 한인의 능동성과 획기적(creativity) 아이디어로 경호실 내에서도 인정을 받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어깨가 무거웠음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에게 특별한 멘토가 있었냐고 묻자 “everyone”이라 답했다. 그 누구에게서나 배울 점이 있기에 모두가 자신의 스승이었다고 답했다.
 
# 무릎부상으로 고통겪어
26년의 공무원 경력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물었더니 뜻밖에도 그는 원래 자신의 꿈은 외교관이었다며 아쉬워했고 내셔널국방학교(National Defense Academy-War College)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꼽았다. 외교관은 앞으로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나이 때문에 대통령 특권 밖에는 없다고 웃었다. 


대통령 경호하며 가장 힘들었던 임무지를 묻자 정치와 언어 그리고 시스템 차이로 오는 나라들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재차 묻자 러시아와 중국을 지목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현실적으로 긴 연설과 가두 행진 그리고 선거 유세 등으로 오랜 시간 서서 경호해야 하는데 3번의 무릎 부상으로 인한 여러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경험들을 토로했다.
 
# 백악관 경호요원이 되려면
그는 대한민국 경호처와의 유대관계를 높이 평가했다. 우선 유연상 경호처장과의 오랜 친분관계와 박민규, 지성은 등 여러 경호처 인사들과의 유대관계가 한미 정상회담 때마다 대통령 신변 보호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 경호처는 미국 경호실을 벤치 마크한 것이고 동맹 관계이니 최고의 파트너 아니겠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한때 한국 경호처와 미국 경호실의 크나큰 차이점은 군인 문화와 그들의 입김이었다. 내가 워싱턴 DC 경찰청 근무 당시 경험한 수많은 한국 경호실 요원들 역시 군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블레어 하우스(영빈관)에 묵었을 당시 경호실 차장(육군 소장 출신)이 대통령 수행 과장의 조인트를 구둣발로 차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반면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 대통령 경호 요원들의 모습은 늘 깔끔한 신사 인상이다. 대통령 경호 요원의 자격에 대해 묻자 3가지 루트를 설명해주었다. 첫째, 학사 소유자로서 일반 루트를 통한 지원, 두 번째는 현재 경찰관인 경우에 이직 하는 방법, 그리고 현역 미군인 경우 특채 되는 경우를 들었다.
 
# 새 삶을 써나가는 데이빗 조
부인과 자녀를 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뉴욕에 소재한 투자 회사인 Citadel 사의 경호 책임자로 이적한다고 답했다. 
이미 지난 주 그의 공식 경호실 근무는 모두 끝났으며 이달 말 떠나는 그에게 그동안 쌓아 모아둔 병가(sick leave)라도 허비하지 말고 사용하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동료 경호실 요원과 의미 있는 웃음을 나누며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 같다며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서로에게 앞으로의 미래를 기약하며 돌아서는데 야무진 그의 입술과 딱 버러진 어깨가 든든해 보였다.
문의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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