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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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아름다운 추억

2021-12-21 (화) 박혜자 포토맥 문학회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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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걸어온 듯 12월에 들어서면 즐겁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늘 그리워진다.
아주 오래 전 남편이 공군 장교로 있던 시절에, 남편이 부대에서 돌아와 경기도 오산으로 전근이 되어 얼마동안 서울을 떠나 있어야겠다고 얘기를 해 주었다. 오산이 어딘지도 몰랐던 그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오산 비행장에는 미군기지와 또 한 쪽에는 한국기지가 서로 함께 붙어 있었다. 그래서 어린 딸과 함께 세 식구가 오산으로 이사를 했다. 마침 전세로 나와 있는 아담한 집에 전세를 들었다. 복잡한 서울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오산에 내려가니 참으로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동네였다. 동네 인심도 좋고 친절하여서 얼마안되어 정이 들었다.

어느날 남편이 부대에서 일하고 있는데 “누가 계 소령을 찾는다”고 해서 문을 열고 보니 그토록 한번 만나보고 싶던 그 친구 피터(Pete Colangelo)가 아닌가? 너무나 반가운 그 순간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한다. 특히 바로 옆에 있는 미군기지여서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좋은 친구가 되었다.

하루는 남편이 미 공군 장교들의 모임에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니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쓸쓸해 한다는 얘기를 듣고 하루 저녁이라도 우리 집에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리 하자고 대답을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방안을 두리번거리다 방구석 모퉁이에 놓인 자그마한 항아리에 눈이 쏠렸다. 그 항아리에는 내가 처음으로 담근 포도주가 익어가고 있었다. 살짝 들쳐보니 색깔이 아주 진분홍색으로 예뻤다. 결혼하기 전 요리학원에 다니며 배웠던 것이 제 몫을 한 셈이다. 남편에게 몇 명 정도 초대하느냐고 물으니 한 열 명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침내 그 날이 다가왔다. 남편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중에 피터라는 귀에 익은 이름을 듣고 올려다보니 마치 미국영화 속에 나오는 영화배우처럼 생긴 사람이 서 있었다. 남편이 피터를 알게 된 것은 1964년에 시험 최고점수를 맞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4개월 동안의 미국연수를 받는 기회가 왔을 때였다. 피터와 남편은 텍사스와 콜로라도에서 같은 클래스메이트로 만났다. 4개월 동안이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그 곳에서 많은 도움을 준 그 친구가 두고두고 고마웠던 차에 피터를 다시 만나 그의 친구들과 함께 초대를 한 것이다.

항아리 뚜껑을 열고 내가 만든 포도주를 맑은 유리잔에 담아 돌리니 맑은 잔속에 진분홍의 포도주 색깔이 너무 아름답다며 즐기는 것을 보며 내 마음도 흐뭇해졌다.
즐거운 식사가 끝난 후 얼마쯤 지나 내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는데 크리스마스 캐럴, 여러 노래를 치니까 모두들 다 일어나 내 뒤로 와서 둥그렇게 서서 노래를 했다. 모두가 생각지도 못한 음악순서까지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고향집에 갈 수는 없었지만 그 밤이 너무 좋았다고 모두들 기뻐하는 것을 보니 흐뭇했다. 남편과 내게도 그 날은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우리 부부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따뜻함을 선사한다.

<박혜자 포토맥 문학회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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