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독교인이 예수님이 자신의 병실을 찾아오셨다는 간증을 했다. 몸이 아파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침대 곁으로 오셔서 큰 위로가 되었다는 간증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정말 그 성도를 찾아오셨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신데 어떻게 그 성도에게 오셨을까 하는 의문이 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큰 신학적 논쟁의 주제가 된 적이 있었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와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울리히 쯔윙글리가 1529년에 독일의 마버그 (Marburg)에서 회동을 가졌다. 신학적 견해 차이를 좁혀서 종교개혁을 힘차게 진행시키기 위해서 였다. 그 회동에 열다섯 가지의 큰 의제가 있었는데, 열네 가지에서는 일치된 견해를 보였지만 마지막 열다섯 번째 의제에서 합의를 보지 못했다.
합의를 보지 못한 주제는 성찬식에서 사용되는 성찬의 실체에 관한 것이었다. 루터는 성찬에 예수님께서 실제로 임재하신다고 주장했다. 예수님께서 “이것은 내 살이요 내 피다”라고 하셨기 때문에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쯔윙글리는 “이것은 내 살이요 내 피다”라는 말씀에서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이 어떻게 성찬식에 계실 수 있는가 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루터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높은 권위와 영광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루터는 성찬의 실체에 대한 말씀은 글자 그대로 이해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는 말씀은 상징적으로 이해했다. 반면에 쯔윙글리는 성찬의 실체는 상징적으로 해석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는 말씀은 글자 그대로 해석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무런 소득 없이 회동을 끝냈다.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기독교인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교리 중의 하나이다. 각 교단에서 추구하는 신학에 따라 성찬의 실체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성찬의 실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견해는 일치하지 않지만,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한다. 예수님의 탄생은 비기독교인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단지 비기독교인들은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고 믿는다. 만일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 사람은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찬란한 영광과 위엄과 권세를 보여주시며 이 세상에 오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모든 사람이 태어나는 것처럼 한 유대 여인의 몸을 통해 이 세상을 찾아 오셨다.
다른 갓난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예수님은 배가 고프시면 마리아의 도움을 구하셔야 했다. 기저귀가 젖으면 찡얼대셨을 것이고 추우면 입술이 파래지시면서 그 연약한 몸을 움추리셨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에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한 여인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실 수 없으셨던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 만큼 신비하고 경이로운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소수의 사람들만이 만났다. 당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어디에서 태어나실 지를 잘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찾아나서지 않았다.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에 방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여관에는 많은 손님들이 있었을 것이다. 손님들 중 아기 울음 소리를 듣고 마굿간을 들여다본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데,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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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룡 / 목사 갈보리장로교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