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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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영웅’이 있는 시대

2021-12-1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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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밤, 미 중부 지역에 최소 22개의 강력한 토네이토가 발생하여 켄터키, 아칸소, 테네시, 일리노이, 미주리, 미시시피 등 6개주를 휩쓸었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수백 명이고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는 등 막강한 피해를 입혔다.

아칸소 주 모네트 매너 요양원의 간호사들은 양로원으로 다가오는 토네이토를 발견하고 노인들을 다른 곳으로 대피시킬 시간이 없자 떨어지는 잔해를 온몸으로 막아 노인들을 보호했다. 휠체어에 탄 노인들을 위해 자신들의 몸을 살신성인(殺身成仁)한 것이다. 이들은 노인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토네이토 속에서 다같이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했다고도 한다.

같은 시간 소방관들도 토네이토가 양로원으로 돌진하자 차를 그곳으로 몰았고 토네이토를 쫒아온 청년 2명과 함께 무너진 양로원 건물에 달려들어 부상자를 구하기 시작했다. 지역주민들도 모두 구조활동에 나섰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켄터키주 메이필드 시의 양초공장도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이곳에는 인근 교도소 수감자 7명도 일하는 중이었는데 그들은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곳에 남아 사람들을 구했다.

지난주에는 나이애가라 폭포 근처에서 무거운 급물살에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가는 차량 안의 탑승자를 구하려는 구조대의 필사적인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았다. 차량은 폭포에서 불과 40여미터 밖에 안떨어져 자칫 휩쓸려 갈 수 있어 구조보트 접근이 불가능했다.

헬리콥터 한 대가 구조에 나섰다. 위에서 보니 사람이 타고 있어 구조대원은 자신의 목숨을 무릅쓰고 밧줄을 타고 내려가 앞 유리창을 깨고 여성을 차량 밖으로 꺼내는데 성공했다. 구조 장면을 지켜보던 다른 구조대와 폭포 주위 관광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안타깝게도 여성은 이미 숨져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11일, CNN이 두 남자와 아기에 대한 사연을 전했다. 21년 전인 2000년 여름, 사회복지사 대니 스튜어트가 동성 남자친구 피트 머큐리오를 만나러 가다가 승강장에서 옷에 감싸인 체 버려진 갓난아기를 발견했다.

그는 탯줄이 아직 남은 이 아기를 경찰에 신고했고 만나려던 친구에게 사정을 말한 후 병원까지 따라갔다. 이후 두 남자는 아기를 입양했고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뉴욕에서 정식 부모가 되었다.

부부의 사랑으로 늠름하게 잘 자란 21살 대학생 아들 케빈, 이들의 스토리가 이미 책으로 출간되어 화제가 된 바 있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시 회자되었다. 세 사람이 웃으면서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보니 참으로 인연이란 이렇게 신비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맨하탄 지하철은 복잡하고 지저분할 뿐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은 갈 길이 바빠 주위에 신경을 안쓴다. 그날 대니는 익스프레스 전철을 놓치는 바람에 아기를 발견하는 운명을 맞닥뜨렸다고 한다.


최근, 세계최대 검색엔진 업체 구글은 올해 인터넷 사용자들이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주제는 ‘치유’ 와 관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2년이 되어가면서 사람들은 지치고 힘든 데 또다시 오미크론 변이가 나타나자 더 이상 불안, 스트레스, 슬픔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우울감과 무력감, 생활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보통사람의 ‘영웅’ 스토리가 치유 효과를 준다. 코로나 시대에 의료진, 경찰, 소방공무원만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토네이토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해 식료품, 옷가지, 이불을 가져다주고 잔해더미를 치워주는 이, 자기 안위만 챙기지 않고 다른 이를 위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이, 기타 추운 연말을 녹이는 선행을 실시하는 이들이 영웅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든 이 시기가 그래도 ‘영웅이 있는 시대’ 임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갑고 고맙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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