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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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가 필요한 세상

2021-12-16 (목)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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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뉴스를 볼 때마다 우울해진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만 지금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철이 되니 또 원수처럼 말싸움으로 시작해서 말싸움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양당 대통령 후보는 물론 모든 정치인들이 비방이 아니라 유치한 싸움박질을 하고 있고 서로 고소 고발이 난무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유치하다는 생각을 넘어 짜증이 난다.
그럴 때마다 영국 하원의 회의 장면이 떠오른다. 회의장에 들어서면 하원의원 정원보다도 의자가 부족해 오른쪽에 여당, 왼쪽에 야당이 끼리끼리 포개 앉기도 하고 때로는 뒤에 서기도 하며 어깨와 어깨를 부딪치며 고함, 야유, 조롱의 목소리로 떠들썩하다.

사실 영국에는 무슨 욕지거리를 해도 무방하다는 세곳이 있다. 축구장, PUB 그리고 하원 회의장이다. 물론 축구장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아주 드문 일이고 민도나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서 그런지 비방 속에서도 절제가 있다. 물론 하원에서 야유, 조롱, 욕도 사실 애교(?)가 있기도 하다. 유능한 정치인 특히 유능한 총리의 탄생은 회의장에서 그 야유와 조롱을 얼마만큼 유모와 재치가 담긴 답변으로 응수하느냐로 결정된다.

그래서인지 지금 대통령 선거판에서 죽기살기식 쌍방 고소 고발 전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그나마 한다는 조롱의 수준이 한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 눈동자를 크게 보이려 성형수술을 한 걸 잘못 되었네 어쩌네 하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조롱뿐이다.
오래전부터 정치의 중심이라고 할 국회의사당의 풍경은 문화, 경제, 체육의 세계에 비하여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언제인가 나 모라는 야당 원내 대표가 “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의 대변인이라는 뉴욕 타임스의 글을...”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자 여당 전 의원들이 소리를 지르고 퇴장해서 회의가 무산됐다. 그뿐인가. 언제인가는 국회 회의장이 잠겨서 문을 부수기도 하고, 문 앞에 드러누워서 농성도 하고, 단상에 오른 총리나 질의하는 의원들이나 살벌한 표정에 꼭 누구를 죽일듯한 표정으로 말을 섞는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먹구름이 되어 온 나라를 덮어 국민들 전부를 우울하게 한다. 이래선 안 된다. 모두가 좀 유머와 재치 그리고 때로는 우스개 소리로 모두가 우울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좀 빗나가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어느 하루 시작을 소개한다. 매주 수요일 열댓 명이 모여서 골프를 친다. 그래서 주말이면 수요일 골프를 치겠느냐며 이메일로 연락이 온다. 지난주 이렇게 회신을 했다.
“참석합니다. 나는 매년 홀인원 한두 번은 했는데 금년은 한 번도 못해서 골프계를 떠난다고 했을 때에 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섭섭함을 넘어 골프계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기가 생겨 골프를 치기로 했습니다.“
그날 골프를 치는 동안 퍼팅을 하는데 공이 영 홀에 안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이 공은 닥터 김이 주어서 준 것인데 골탕 먹으라고 짱구 공을 줬나봐. 공이 홀 앞으로 굴러 가는가 싶더니 곧 옆으로 흘러가. 확실히 짱구 공이야. 그런데 정작 닥터 김은 실력은 형편없는데 빳따(putter)가 좋은가봐. 구멍(hole)으로 잘도 들어가네.“
나의 이 짧은 유머는 싱거운 사람, 실속 없는 사람이란 핀잔을 받을지 모르겠으나 진정한 유머는 유머 모음 책 같은 곳에 있는 것 보다 어느 시간, 어느 상황에서 서로의 소통 속에서 이루어지는 유머가 서로 마음을 열며 즐거움을 나누는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모국의 어두움이 이곳 우리 한인사회까지 스며들고 있다. 자, 이제 우리 대화 속에서 농담하고 미소 짓고, 우울함에서 명랑함의 세계로 유머를 하며 그렇게 살자고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유머가 있는 세상이 행복의 세상이다.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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