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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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 부정과 긍정의 긍정

2021-12-13 (월)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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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세상에 완전이라는 말은 참 어려운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완전’‘절대’‘최고’‘최선’이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어느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흠도 티도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어느 부분에서 누가 의롭고 어느 한도 내에서 어떤 일들은 부정하다고 판단하고 평가할 때가 있다.
우리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축복은 생각하고 돌아볼 줄 아는 자기성찰과 반성의 기회가 있어서 지금까지 동물들은 늘 그 산과 들에 머물러 같은 일만 반복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걸어 다니기만 했던 사람들은 차를 타고 다니고 비행기를 타고 이제는 우주에 까지 관광을 가는 시대가 된 이유가 바로 옮고 그름을 나름대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분석력과 지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사람은 옮고 그름의 갈림길에서 선을 잘 지키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선을 지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슬프고 어려웠던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핍박, 그리고 다툼과 분열, 증오와 대립은 바로 옳고 그름의 잣대가 분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무엇이 참되고 무엇이 거짓되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양심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바로 사람이 갖고 있는 양심, 물론 그 양심도 본질적으로는 타락한 양심이지만 자기 자신 안에서는 그 타락한 양심이라도 자기를 향하여는 정의와 진리를 외치는 소리가 되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바르고 그릇 된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요즘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해서 분명한 직선보다는 곡선을 많이 택하고 있다. 중국의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된 지식이다”라고 했다.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공정이고 정의인데 사실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듣는 사람이나 무엇이 공정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혼동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떻게 살아가야 하고 판단해야 하는지는 참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삶의 기본은 긍정할 것은 긍정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정할 것을 긍정하고 긍정할 것은 부정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그래서 부정의 부정의 틀, 긍정의 긍정의 틀에 갇히게 되어 부정이 무엇인지 긍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자안에 들어가서 전체를 볼 수 없는 장애자가 되는 것이다.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고, 못하는 것은 못 하는 것인데 잘하는 것을 못 한다고 해야 하고, 못하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니 이것 또한 슬픈 일이 아닌가?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옛날의 진실이 오늘의 거짓으로 되고, 오늘의 거짓이 미래의 진실로 만드는 재판관이다. 그러니 아무리 사람이 꾀가 많아도 지금 숨긴다고 해도 어느 날 그것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누가복음12:2)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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