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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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필요한 할머니의 시선

2021-12-10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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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메사에 사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텍스트를 보냈다. 추수감사절 식사에 참석할 것인지를 묻는 문자였다. 6명의 손주를 둔 할머니는 감사절이면 으레 온 가족과 친지들을 불러 북적북적 식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수업 중 메시지를 받은 17세의 피닉스 고교생은 혼란스러웠다. 누군가가 할머니라며 메시지를 보냈는데 모르는 번호였기 때문이었다. 의아해하는 소년에게 할머니는 셀피 사진을 보냈다. 처음 보는 백인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번호를 잘못 눌러 텍스트가 엉뚱한 사람에게 간 것이었다. 소년은 텍스트를 보냈다. “그래도 식사하러 가도 되나요?” 할머니는 답했다. “물론이지. 그게 할머니들이 하는 거란다 … 모두를 먹이는 거.”

완다 덴치 할머니와 흑인소년 자말 힌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것이 2016년 가을이었다. 그 재미있는 인연을 소년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당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이후 이들은 매년 감사절이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올해로 6번째 추수감사절을 같이 맞았다. 그동안 소년은 성인이 되고 약혼녀가 생겼고, 할머니는 지난해 코비드로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되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텍스트가 잘못 스치면서 인연이 되었다. 6년 전 낯선 소년은 이제 할머니의 어엿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오하이오, 신시네티 인근에 사는 수잰 버크는 커피 광이다. 매일 아침 던킨 도넛에 들러서 커피를 산다. 거기에도 옷깃 스치는 인연이 있었다. 지난 3년 커피를 주문하면서 그는 드라이브 스루 직원 에보니 존슨과 친해졌다. 그런데 거의 매일 보던 존슨이 최근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알아보니 렌트를 못내 아파트에서 쫓겨나 살 집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존슨이 혼자 삼남매를 키우며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를 잘 아는 버크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한겨울에 거처도 없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어쩔 것인가. 그들이 더 이상은 집 없는 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버크는 저소득층을 돕는 여러 자선단체들과 접촉했다. 그렇게 집을 구하고, 가구도 마련했다.

지난 주, 가구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집안에 들어선 존슨은 감격했다. “제발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맞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서 겅중겅중 뛰었다. “존슨과 아이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뭔가를 하고 싶었다”고 버크는 말했다. 그 가족에게는 세상에 더 없는 선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뉴스를 통해 위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할머니’ 그리고 ‘인연’이다. 추수감사 디너에 낯선 흑인소년을 초대한 완다 덴치 그리고 흑인 싱글맘에게 집을 선사한 수잰 버크는 둘 다 나이 지긋한 여성, 할머니들이다. 생판 남인 사람들을 자기 식구처럼 푸근하게 품어 안는 존재가 할머니 말고 또 있을까. 젊은 남성이나 여성, 나이든 남성 중에도 이타적인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푸근함’ 하면 역시 할머니다. 각자 떠올려 보면 바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우리들의 할머니가 그 증거이다.

진화생물학과 문화인류학에는 ‘할머니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는 번식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폐경 후에도 상당 기간을 심신 건강한 상태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며 산다. 그것은 할머니들에게 종의 번식을 위한 역할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할머니 가설’이다. 여성이 나이 들면 자손을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손주들을 돌보고 거둠으로써 간접적으로 후손의 생존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런 역할이 번식에 도움이 되니 생식기능이 끝난 후에도 오래 살도록, 인간이 장수하도록 진화했다는 설이다.

‘가설’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후손을 돌보는 구석기시대 할머니들의 시선이 어떠했을 지는 짐작 가능하다. 젊은 시절 경험 없이 자식을 키울 때와는 또 다르게 어린 생명이 애틋하고 소중했을 것이다. 자식들 키우면서 터득한 지혜와 사랑을 듬뿍 쏟아 부으며 지극정성으로 돌봤을 것이다. 그것이 자손번식에 유리하니 유전자에 입력돼 여성들에게 대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완벽한 사랑은 때로 첫 손주가 오고 나서야 등장한다”는 아일랜드 속담이 있다. 젊어서 많이 했던 나무람과 지적과 훈계는 스르르 사라지고 관용과 수용, 용서가 들어서서 마냥 푸근한 것이 노년의 시선, 특히 할머니의 시선이다.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면 인연이 새롭다. 옷깃 스치는 인연에도 소중함이 보인다. 길 가다 스치는 것, 한 나라 한 지역에 사는 것만도 수천겁의 인연의 결과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부모 자식 형제 부부 … 우리 생의 중심축이 되는 관계들은 보통 인연이 아니고는 맺어지지 못한다고 한다. 잘 산 인생이란 인연들을 잘 가꾸고 갈무리한 삶. 연말은 우리 생의 귀한 인연들을 돌아보고 보듬는 계절이다. 그들을 할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서운함도 미움도 녹아내릴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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