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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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장 기뻤던 일은

2021-12-09 (목) 최숙자 / 비엔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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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서, 뒷마당을 오렌지 색깔로 화려하게 장식하던 메리골드 꽃이 이제는 재색으로 변해서 마음을 슬프게 하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한다.
2021년 팬데믹을 지나면서 제일 즐겁고 감격했던 추억은 백신을 두 번 맞고 2주의 자가격리를 끝내고, 교회 예배에 참석하러 간 3월 21일이다. 일년 넘게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보다가, 교회에 미리 등록하고, 마스크를 쓰고 교회에 도착하니, 멀리서 누군가가 반가이 우리 부부를 부르는데, 아무리 기억을 총동원 해도 상대방을 알아볼 수가 없어서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돌아가신 이원상 목사님의 부인 이영자 사모님이셔서 우리는 한참동안 깔깔대고 웃으며 오랜만에 다시 만난 회포를 풀 수 있었다.

외할머니부터 성당을 다니시면서 하나님을 영접하셨고, 내가 어렸을때 어머니와 나는 후암 성당의 교인이었지만,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꼭 나를 데리고 명동 성당의 자정미사에 참석하게 하셨다. 그 추운 밤에 후암동에서 버스를 타고 명동에서 내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언덕길을 걸어서 성당에 도착하면 졸려서 계속 자던 나를 깨우시던 어머니가 생각 난다. 아마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자서 딸을 기르시던 젊은 어머니에게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자정미사가 매해 연말의 성지순례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회를 다녔던 남편과 철없이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을 성당에서 해도 괜찮다던 남편이 두 살이 된 딸을 성당에서 영세 받기를 원하셨던 친정어머니의 의견에 반대함으로 나의 믿음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무척이나 섭섭해 하셨지만 나는 주위 몇 분의 목사님을 열심히 관찰해서, 말씀은 적었지만 진실하신 이원상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맥클린의 루인스빌 교회에 세 들어 있던 교인이 백명도 안 되는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40여년 한 교회를 다니면서, 목사님과 사모님은 우리 식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셨다.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관심을 가지시고 위튼 칼리지( Wheaton College) 신학대학 교수가 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기도해 주셨고, 빌리 그래엄(Billy Graham) 목사님 부부가 졸업한 학교에서 한국사람으로 처음으로 교수가 되었다고 매우 좋아하셨다. 아들네와 함께 연말에 찾아 뵈면 젊은 학자에게 궁금하셨던 많은 질문을 하시면서, 대화를 즐거워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40여년 전에도 우리를 환영해 주시던 이영자 사모님은 일년만에 교회를 나간 우리를 다시 반가이 환영해 주셨는데, 우연일까 아니면 지금은 천당에 가신 이원상 목사님께서 보내 주셨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끼리 뒤에서 수퍼우먼이라고 부르던 사모님은 낮에는 사모님으로 밤에는 약사로 일을 하셔서, 저녁의 교회 모임에서는 자주 졸곤 하셨다. 기도와 음식으로 교인에게 사랑을 베푸셨고, 교회가 너무 커지기 전까지는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신 교인들을 기억하셨다가 집으로 주보를 보내 주신 정성과 기억력으로 유명하셨다.
새로운 환경에서 예배에 다시 참석하는 기쁨에, 오직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는 즐거움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2021년이었다.

<최숙자 / 비엔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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