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콘텐츠 파워의 상징이 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 지난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면서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징어게임은 참가자 456명이 우승자 1인에게 돌아가는 상금 456억원을 놓고 오징어게임을 비롯한 6가지 게임을 하는 내용이다. 게임의 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승부에서 패배한 참가자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인간을 극한의 경쟁으로 내모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그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들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드라마다.
오징어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현실인 ‘살기 아니면 죽기’라는 실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게임 참가자 455명의 죽음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명에게 456억원의 독점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지구촌 70억 인구 중 70여명의 극소수 ‘수퍼 리치’(super-rich)가 하위 35억 인구가 가진 총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무척 닮았다.
오징어게임의 ‘죽기 아니면 살아남기’ 경쟁의 전형은 월급쟁이들의 꿈인 대기업 임원 되기에서 극명하고 나타난다.
한국 대기업의 상징인 삼성전자의 3분기 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 임원은 총 641명이다. 미등기임원 886명 가운데 전문위원 등 연구개발(R&D) 직군을 제외한 숫자다.
전체 직원이 11만4,000여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0.5% 가량만이 소위 ‘별’을 달 수 있다.
임원이 됐다고 해서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상무에서 전무로, 다시 부사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삼성전자에서 상무대우를 포함해 상무는 모두 428명. 전무는 129명에 불과해 4대1의 경쟁률이다. 부사장은 67명으로 가능성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현재 삼성전자 내 사장은 16명뿐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에게는 높은 연봉과 처우가 주어진다. 하지만 별을 달 수 있다는 기대감에 경쟁을 벌이다 99.5%는 소리없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죽기 아니면 살아남기 경쟁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참여하면서 계속 진행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나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왜곡된 현실 인식 때문일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대가에 초점을 두고 그것이 주는 유익이 마치 모든 사람들이 다 소유할 수 있는 왜곡된 현실 인식은 공정한 기회와 정당한 경쟁이라는 가치로 포장되어 다시 확대 재생산된다.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고, 돈 많이 주고 알아주는 상위권 대기업에 입사하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 애쓴다. 상위권을 향해 끊임없이 그렇게 경쟁하며 자본주의의 왜곡된 현실 인식에 포섭되어 간다.
오징어게임에서는 경쟁에서 패배한 참가자는 곧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현실의 경쟁 구도에서는 죽음 대신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그 기회를 잡아 올라 갈 수 있다는 왜곡된 현실 인식이 주어진다. 경쟁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다시 치열한 경쟁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강수돌 고려대학교 교수가 쓴 ‘경쟁 공화국’에는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우분투 철학의 일화가 등장한다. 한 서구 인류학자가 부족 어린이들에게 사탕이 든 바구니를 멀리 떨어진 나무에 매달고 달리기를 해서 가장 먼저 도착한 어린이가 모두 갖는 놀이를 제안한다. 인류학자의 기대와는 달리 부족 어린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바구니를 향해 걸어가 모두 사이좋게 나눠 먹고 말았다.
이들 어린이들의 대답은 이렇다. “우분투,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다른 애들을 두고 어떻게 혼자서만 행복할 수 있나요?”
너와 내가 더불어 함께 공존을 모색하는 인식. 무한 경쟁 게임의 대안이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한편으론 자본주의 경쟁을 비판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 경쟁에 열렬히 참여하려는 욕망이 있는 우리 현실 모순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
남상욱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