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기에 바람인 줄 알았더니 지나가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세월이다. 벌써 12월이 되었다. 초겨울 바람이 세다. 마지막 나뭇잎마저 떨어진다. 바람이 부니 낙엽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소용돌이치고 곤두박질친다. 앙상해지는 여윈 나무 위를 올려다 보니 하늘은 높고 공기는 차갑다. 풍성하고 넉넉했던 뭉게구름은 낙엽처럼 흩어지고 흘러간다. 우리도 낙엽이고, 한조각 구름이다.
‘델타 돌연변이’보다 2배 전염성이 빠르다는 코로나19 새 변이인 ‘오미크론(Omicron)’ 신출로 12월의 모습이 웬지 어수선하고 세상이 패닉에 빠진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마지막 달 느낌보다는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새로움을 맞이하는 달이라는 마음으로 보내고 싶다.
한 해를 돌아보니 세월이 빨리 가는게 아니라 내가 빨리 가고 있을 뿐이다. ‘살아도 백 년을 다 채우지 못하면서 어찌 늘 천 년 후의 일까지 근심하는가’라는 말이 있다. 학(鶴)도 아니면서 천 년을 어찌 살겠는가. 현대의학이 발달했지만 잘 살아야 백 년도 못 살고 가는게 인생이다. 그런데도 마치 천 년이라도 살 것처럼 바둥바둥 사는게 인간이다.
매년 눈썹세는 날이 가까워지면 나이 많은 사람일수록 세모(歲暮)의 허전함을 더 느끼게 된다. 앞으로 살 날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일거다. 우리 어머니들이 ‘새색시가 김장 삼 십번 담그면 할머니가 된다’고 하신 말씀이 나이테가 늘수록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돈 벌어 가족 먹여 살리기 위해 바쁘다보니 자기 시간은 생각도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 ‘젖은 짚단 태우듯’ 살았다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인생 60부터’라고 하더니 수명이 연장되니 ‘인생 70부터’라고 말이 바뀌었다. 그리고는 ‘노인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감언이설(甘言利說)이지만, 분명히 듣기 싫은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노인을 극찬해도 70세가 인생의 정상은 아니다.
해(年)가 바뀔 날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겠다. 새해에도 현모양처가 따뜻하게 지켜주고, 손에는 다정한 벗 셀폰이 있다. 유기농 식재료를 제공해 주는 가꿀 텃밭이 있고, 만병통치약을 무료로 조제해 주는 산(山)이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 살다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 우리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 백 년도 힘든 것을 천 년을 살 것처럼…. 나훈아의 ‘공(空)’이라는 노래 가사 일부이다.
공(空)은 대승불교의 주요 개념어로 사물이나 사태에 실체(實體)가 없음을 의미한다. 무(無)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존재의 부정이지만, 공(空)은 존재의 실상(實相)을 의미한다.
우리는 살면서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인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Come Empty, Return Empty)이다. 한 시대를 소용돌이치게했고 공중의 나는 새도 떨어뜨릴듯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전직 두 대통령도 결국 빈손으로 가서 구천(九泉)을 떠돌고 있다. 한마디로 인생은 ‘공(空)’이다.
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 살아도 백 년을 다 채우지 못하면서/상회천세우(常懷千歲憂) 어찌 늘 천 년 후의 일까지 근심하는가?/주단고야장(晝短苦夜長) 낮은 짧고 밤이 길어 괴로우면/하불병촉유(何不秉燭遊) 어찌 촛불 밝혀 즐기지 않는가?
위악당급시(爲樂當及時) 인생을 즐김에도 때가 있는데/하능대래자(何能待來茲) 어찌 내년(來年)을 기다릴 것인가?/우자애석비(愚者愛惜費) 어리석은 자(愚者)는 돈을 애지중지 아끼지만<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데…>/단위후세치(但爲後世嗤) 그 또한 세상의 웃음거리 아닌가?/선인왕자교(仙人王子喬) 선인왕자 교<喬; 왕자 이름>는 불사장생(不死長生; 죽지 않고 오래 살다)했다지만/난가여등기(難可與等期) 그(왕자)와 같이 하기는(오래 살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하루하루가 일 년 중에 최고의 날임을 당신의 마음속에 새겨라!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소중함을 안다. 힘들 때 되뇌이며 가슴을 울리는 구상 시인의 ‘꽃방석’ 시 한 구절을 읊으면서 12월을 보내고 싶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자리가 꽃자리니라.”
새해는 항상 꽃자리에 앉고, 꽃길을 걷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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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