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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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린 친구

2021-12-02 (목) 다니엘 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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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다는 뜻은 약하다, 온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마음이 너그럽고 따뜻한 사랑을 품은 단어이기도 하다. 여린 친구의 사이는 일방적이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는 서로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관계이다. 여린 친구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존재는 아닌 것 같다. 나의 일생 중에 사귄 친구 중에서 여린 친구는 몇이나 될까.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가장 감동을 준 여린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첫 번째는 화가 김기환과 이중섭의 우정이다. 이중섭은 1945년 5월에 일본의 도쿄 분카 미술학원 재학 중에 교제했던 일본인 아내 이남덕과 원산에서 결혼하여 원산 사범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다 6.25 사변으로 부산에 피난하여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돌볼 처지가 못되어 식구를 아내의 친정으로 떠나보냈다. 이 중섭은 그림 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 그런 그에게 절친인 화가 김기환이 찾아왔다. 먹고 살기위한 일거리를 가져온 것이다. “여보게 중섭, 부산 시청에서 일선에서 고생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보낼 엽서에 실을 삽화 일거리를 받아 왔네. 이 일을 하면 세 끼 밥먹는 걱정은 면할 수 있을 걸세.” “ 자네 혼자해도 될 걸 왜 나와 일을 나누려 하는가?” “아내와 상의했는데 어려워도 서로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네.'

중섭과 기환은 부산시청 한 구석 작은 방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중섭의 꿈은 오로지 돈을 모아 일본에 보낸 아내와 두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함께 사는 것이었다. 피난시절이 끝나고 중섭은 화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김기환의 도움으로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전시회를 미도파 백화점에서 열었다. 40여점을 출품하여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그림을 모두 팔았다. 판매의 대부분이 외상거래가 되어 구매자가 판매대금의 지불을 차일피일 하는 통에 손에 쥔 돈은 겨우 수고비 정도였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싶은 꿈이 물거품이 되었다. 중섭은 크게 실망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조현병과 간염이 악화되어 자리에 눕고 만다. 김기환이 중섭을 찾아왔다. 두 사람이 서로 부둥켜 안고 통곡을 했다. 기환이 중섭을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 입원시키고 그의 부인과 함께 극진히 간호했다. 중섭은 끝내 아내와 두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지 못한 채 41세의 꽃다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참담하게 겪었던 루카시 도비슨과 폴란드 군의 어린 취사병과의 진솔한 사랑의 사연이다. 루카시는 독일군의 공습에 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였다. 아무도 그를 돌봐주지 않는 폐허에서 그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군 부대 주위의 쓰레기통에서 군인이 먹다버린 음식 찌꺼기를 먹거나 행인들에게 동냥을 해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며칠 동안 굶었던 루카시는 함께 지내는 고아들을 위해 군 부대 취사실에 숨어 들어가 감자와 옥수수 등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훔쳐서 식당 밖으로 나오는 순간 취사병에게 붙잡히고 만다. ‘아, 이제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삶을 포기하려는 루카시. 그런데, 취사병은 말없이 루카시를 데리고 취사실로 들어가 많은 감자를 호주머니에 넣어주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프링글스 취사병은 벙어리였다.

다음 날 프링글스를 만났을 때 그의 얼굴과 몸에 난 상처를 보고 그 영문을 물었다 그는 그냥 웃기만 했다. 사실은 루카시에게 식품을 불출한 범인이 프링글스란 것을 알고 그의 상관이 얼굴을 구타하고 채찍으로 프링글스를 때려서 난 상처였다. 프링글스의 부대가 독일 군에게 포위되어 병사들이 굶어 죽어갔다. 프링글스가 탈영을 했다. 프링글스의 소식이 두절되어 루카시는 함박눈이 내리는 독일군 부대주위를 돌면서 프링글스를 애타게 찾는다. 배고픔과 기다림에 지친 루카시는 눈 속에 쓰러져 잠이 든다. 그 순간, 쾅 쾅 쾅 하고 총소리가 울렸다. 루카시가 눈을 떠서 연병장을 바라 본다.

프링글스가 사형대에서 고개가 떨구어지고 허름한 군모가 벗겨져 머리에 반쯤 걸쳐 있었다. 그의 발 아래로 조그만 감자 네 알이 떨어져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루카시는 미국으로 이민을 해서 열심히 일한 끝에 프록트 앤 갬블사의 사장이 되었다. 루카시는 생명의 은인이자 그에게 큰 사랑을 베푼 프링글스를 잊을 수가 없었다. 루카시는 프링글스의 은혜를 보답하기위해 무엇인가 보람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몇 개월이 지나 프링글스의 이름을 따서 ‘프링글스'라는 감자칩을 만들었다. 감자칩의 박스 한 가운데는 둥글고, 가르마를 하고 콧수염이 많은 프링글스의 얼굴을 넣었다. 프링글스 칩은 프링글스와 루카스, 여린 두 친구의 사랑이 세상에 알려져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과자가 되었다.

루카스는 프링글스 칩의 판매수익금 전액을 전세계 전쟁고아들을 위해 기부했다. 여린 두 친구의 아름다운 사랑이 수 많은 고아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참된 사랑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준다. 죽은 프링글스가 진실한 오블레스 오블리주를 고아들에게 선물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진실로 참된 여린 친구를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장 13절)

<다니엘 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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