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의 2020년 대선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마련된 3.5조 달러 사회재건(Build Back Better: BBB)법안이 땡스기빙데이 전에 하원을 마침내 통과하고 상원으로 이송됐다. 이제 상원에서 큰 수정 없이 통과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 법안이 하원에 제출되기까지 민주당내 좌파와 온건파간에, 끊임없는 줄다리기와 협상이 거듭됐었다. 마침내 하원에 법안이 제출된 후에도 의회의 민주당 온건파의 반대로 그 법안의 예산총액을 절반(1.75조 달러)으로 줄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제 상원에서 다시 공화당과 협상하고, 민주당 의원간에 다시 협상을 거쳐야한다. 또 수정이 있으면 그 수정 의결안을 다시 하원에 보내서 승인을 받은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상원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수가 같기 때문에 민주당 의원 한 명만 이탈해도 부결될 위기에 놓여있다. 또 의회가 연방정부의 업무정지를 방지하려면, 12월 중순까지는 국가부채한도 인상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어서 그 이전에 BBB법안을 매듭지어야 한다.
이렇게 BBB법안의 오랜 심의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세계은행 근무 당시의 일들을 회상하게 되었다. 필자는 세계은행을 대표하여 개발도상국가에서 비슷한 목적의 법안을 제안하여 사회정책개혁을 이끌어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회의 과정을 보고 개도국에서 이미 일어난 일을 회상한다니, 저자가 실수한 것으로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적어도 BBB법안의 사회정책에 관해서는 이미 개혁을 실시한 개도국이 많다는 것을 보이겠다.
BBB법안에는 크게 두 가지의 중요 국가정책이 구현되어있다. 하나는 일산화탄소 생성억제와 기후변화대처와 같은 환경보호정책이다.
다른 하나는 유아와 아동을 위한 보육과 교육강화정책, 근로장려정책, 건강보험보조정책, 노인건강보험강화정책 등 일련의 사회복지강화정책이다. 물론 국가 부채를 최소화 하면서 이들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한 조세개혁정책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 글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비견한 사회복지강화정책에 집중한다.
2000년에 개도국을 포함한 세계각국의 정상들은 UN총회에서 MDG (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합의하고, 이를 2015년까지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였다. MDG의 핵심주제는 개도국의 절대빈곤층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빈곤타파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OECD 선진국을 위시하여, 중동 산유국과 중국 등 상위 개도국의 원조자금이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국가별 배분방법을 개선하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그 결과 개도국은 2010년에 이미 MDG의 빈곤타파목표를 달성하였다(빈곤인구는 19억명에서 12억명; 빈곤률은 43%에서 21%). 이러한 빈곤타파의 목표를 달성하는데는 개도국의 양호한 경제성장률이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높은 경제성장률 달성에 따라서 빈곤인구는 절반으로 줄었지만, 부수적으로 부와 소득의 불균형이 확대되는 폐해도 발생했다. 빈곤타파의 목표를 획기적으로 달성한 국가일수록 이러한 불균형은 더욱 눈에 띄게 높아졌다. 그 대표적인 국가들이 원래 불균형이 심했던 멕시코,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과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었다.
그래서 UN의 주도하에 세계정상들은 2015년에 다시 경제성장의 제고로 빈곤타파를 완성하면서도, 불균형의 축소와 환경개선을 목표로 삼아 2030년까지 지속적으로 개발하자는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상위 개도국은 빈곤타파의 목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득과 부의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이미 포착하고, 획기적이고 기발한 불균형 축소 정책을 추진하였다. 예를 들면, 브라질은 2003년에 Bolsa Familia(가족 호주머니)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2010년에는 전국민의 1/4(소득하위 10%계층인구의 60%)이 그 혜택을 입었다. 이 프로그램은 17세 이하의 어린이를 가진 빈곤가정에, 자녀의 취학과 예방접종을 조건으로 하여, 매월 현금을 지급하여 어린이의 건강과 교육기회의 균등을 확보하고 소득불균형의 축소를 도모하였다. 이를 위한 재정지출은 GDP의 0.5%에 달하였다.
또한 멕시코는 브라질 보다 더 일찍, 가족 호주머니 프로그램과 비슷한 Oportunidades(기회)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빈곤가정에 보조금을 매월 지급하여, 빈곤 자녀들의 교육-보건 기회의 균등을 확보하고, 소득불균형을 축소하려했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미주개발은행(IDB)이 이 프로그램의 지속을 위하여 차관을 제공하자, 다른 개도국들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그와 유사한 조건부 현금지급이라는 사회복지정책을 2000년대에 실시하였다. 한국에서도 이미 2000년대에 6세미만의 자녀를 가진 가정에 보육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실시하였다. 세계은행은 2009년에 각국의 프로그램 결과를 분석한 결과, 모두 다 경제적으로 타당성있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이었다고 결론지었다.
BBB에 포함된 유아현금보조프로그램은 협상 끝에 1년간의 비용만 계상되어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유아보육과 교육정책만 상위개도국과 비교하였지만, 근로자보건보험정책이나 노인건강보험강화정책도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한국의 보건복지부장관이 미국의회에서 연설하면서, 미국정부가 원하면 어떻게 전국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건강보험제도를 만들지에 관하여 경험에 비추어서 기술원조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한 것이 워싱턴 포스트 1면기사로 실렸었다. 아무쪼록 BBB법안이 조속히 의회를 통과돼 실시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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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우 / 세계은행 은퇴 경제학자,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