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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9 (월) 이중길 /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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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혈의 그림자 흘러 내리고 있다
도로 우편에 사슴의 주검이 널려있다
주위에는 갈가마귀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샤덴프로이데의 기쁨이 보인다
반대편에 암사슴 뭉개진 모습으로 흩어져 있다
뜨겁게 맺는 본능 때문에 버려진 목숨
보이지 않은 차량의 불빛을 피하지 못해
버려진 사랑의 랑데뷰 서로 품고 맞대던
입술도 실종되었다
잘려간 수컷의 머리를 침실에 걸어놓고
야생을 흉내 내는 누군가의 칼질
늦가을 추위를 뚫고 걷는 아침
사랑을 훔쳐가는 손길이 무섭다
어제도 여덟 갈래의 뿔을 가진 수사슴도
머리를 잃을 뻔했지 구석진 숲 속에 숨져 있어
그 꼴을 피할 수 있었지
곧 누군가에 의해 잘려져 나갈 것이다
철철 흘러나는 야생의 힘을 취하기 위하여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처럼 느껴지는 독일어.

<이중길 / 포토맥 문학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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