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바이든 대통령의 사랑

2021-11-29 (월) 제이슨 최 수필가
크게 작게
1972년 델라웨어 주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현직 거물정치인에게 도전장을 내고 단 1% 차이로 승리하여 미국상원 역사상 6번째의 최연소(30세) 상원의원이 되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 그는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둔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교통사고로 첫 부인 닐리아와 딸 나오미를 잃고 두 아들도 중상을 입자 절망했던 아버지였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병상에서 신음하는 아들을 간호하겠다며 상원의원을 포기하려고 했으나 민주당 지도부의 끈질긴 설득으로 아이들의 병실에서 선서를 마치고 상원의원이 된 변호사이자 정치인이 조 바이든이다.

어린 시절 말을 더듬는 증세가 심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했으며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하고 건장한 체격 덕분에 운동선수로도 활약했다.

바이든이 첫사랑 닐리아 헌터를 만난 것은 대학졸업을 앞둔 어느 날 미식축구팀의 친구들과 나소의 파라다이스 섬으로 휴가를 가서였다. 파라다이스 섬에는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져있었지만 가난한 대학생 조는 공공해변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옆에는 아름다운 브리티시 콜로니얼 호텔이 있었는데 투숙객 외에는 출입이 금지된 해변에서 젊음이 눈부시게 빛나는 여대생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바이든과 친구 프레드는 투숙객들이 말리려고 울타리에 걸어둔 타월로 브리티시 콜로니얼 호텔 마크가 보이도록 허리에 두르고 투숙객처럼 정문의 경비원들을 지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수영장 덱으로 갔다.


바이든과 프레드는 긴 비치의자에 앉아있는 갈색머리와 금발머리의 두 미녀를 보았다. 프레드가 말했다. “내가 금발머리 찍었어!” 바이든은 프레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먼저 금발머리 여학생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안녕, 난 조 바이든이야” “안녕 조, 나는 닐리아 헌터라고 해” 닐리아가 바이든을 바라보았을 때 바이든은 닐리아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닐리아는 시라큐즈 대학교를 졸업한지 두달 째였고 시라큐즈 중학교에서 곧 교편을 잡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 첫 만남 이후 바이든은 모든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매일 닐리아와 만나면서 파라다이스 휴양지의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속삭이고 뉴욕으로 돌아와서도 그 사랑을 이어나갔다. 얼마 후 두 사람은 결혼했다. 그리고 세자녀를 낳고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닐리아는 교통사고를 당해 영원히 바이든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세월은 흘러 바이든이 마음을 추스리고 상원의 업무에 몰두할 즈음, 뉴캐슬 카운티 공원의 광고 캠페인에 모델로 등장한 금발의 여인을 보고 저런 여성이라면 한번 사귀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프랭키가 그녀의 전화번호를 주면서 이름은 질 제이컵스라고 소개해주었다. 바이든은 32세였고 질은 이탈리아계 부모를 둔 24세의 꽃송이 같은 여인이었다. 바이든은 그날 밤 질을 만나고 다시 사랑에 빠졌다. 이들의 사랑은 진실했고, 1977년6월 결혼했다. 질은 닐리아가 낳은 두 아들을 친자식보다 더 정성들여 키우는 훌륭한 엄마이자 아내가 되었다. 질에게 청혼할 때 바이든은 재선에 출마하려던 때였다. 질이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바이든은 “질,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재선에 출마하지 않겠소!”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의 상원의원을 시켜준다면 아내 10명이라도 버릴 수 있는 남자가 널려있는(?) 세상에, 상원의원을 못한다고 해도 당신을 사랑하고 결혼하겠다고 한 바이든의 사랑에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제이슨 최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