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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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별이 있는 편지

2021-11-28 (일) 조태자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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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나는 그녀의 이름도 몰랐고 어디에 사는 지도 모르며 같은 교회의 교인인 줄도 몰랐다. 신문에 난 그녀 가족의 엄청난 비극과 비통한 사건을 알게되고 그녀가 매일 공원 묘지를 찾아가 울고 온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달과 별이 있는 따스하게 그녀의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편지를 쓰기로 하였다.

미세스 김은 따뜻한 정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두 아들의 엄마였으며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였다. 그녀 가족은 갑자기 닥친 불행한 사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 영구 귀국 하였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 여정에는 늘 지인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긴 세월속에 생각나는 인물이 있고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까마득한 옛시절 초등학교 때의 옛친구가 보고 싶기도 하고 명절이면 늘 북적이던 방앗간집 친구는 세월이 지나도 늘 그립다.


나는 유독 그 미세스 김이 지금 한국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무얼 하고 지내는지… 한 번도 잊어 본적이 없으며 그 비극을 어떻게 이겨내고 또 다른 삶을 일구어 나가는지 늘 노심초사 하였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그날 저녁 미세스 김의 큰아들은 친구에게 빌린 노트북을 갖다주러 친구의 아파트를 찾아 갔다가 파킹장에서 괴한의 총에 맞고 피살 되었다.
천인공노할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미세스 김은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탄과 비애와 울분으로 거의 실신지경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직장을 그만두고 큰아들이 묻혀 있는 공원묘지로 매일 찾아 가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인생을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미세스 김의 십자가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어제도 아들이 묻혀 있는 곳에 가서 눈물샘을 터트렸으며 오늘도 역시 그곳에 가서 펑펑 울고 왔다. 그녀는 눈이 아프도록 매일 가서 몸부림 치며 울었고 어떤 때는 지쳐 쓰러져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때 공원 묘지측에서 미세스 김을 눈여겨 보고 자기들과 함께 공원묘지 오피스에서 같이 일할 것을 제안하게 되며 그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내가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던 때가 이때 쯤이다.
편지를 받은 미세스 김은 누가 나에게 이런 고마운 편지를 보냈는지 몹시 궁금해 하며 친한 친구인 C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는데 C는 그 편지의 마지막에 있는 나의 이름을 보고 연락을 하여 우리 셋은 만남을 갖게 되었다.

미세스 김은 나의 편지를 읽고 많이 울었으며 위로와 마음의 평안을 어느 정도 얻었노라고 말하였는데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얘기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미세스 김을 보자 너무 가슴이 아파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고 어떠한 말을 한다 할지라도 상처만 줄 것 같아서 그녀의 손만 꼬옥 잡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말이 없었고 사람의 눈길을 피하는 것 같았다. 그 만남 후 우리는 재회할 길이 없었고 그녀가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영주 귀국 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우연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필연이라고 해야 할지… 그로부터 12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화창한 봄날, 골프장에서 우연히 C를 만나게 되는데 C가 먼저 자기 한테 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꿈에 그리고 너무나 보고 싶었던 12년 전에 헤어졌던 그 미세스 김이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껴안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녀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고 나는 그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줄을 몰랐다. 그녀는 그 사이 좀 통통해 졌으며 흰머리도 희끗희끗 보였다. 그 사이 작은 아들이 결혼해서 손주를 보아 할머니가 되어 있었고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보게 되었다.

며칠 후 한국으로 떠난다고 하며 아쉬움을 남긴채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우리는 헤어졌고 예기치 않은 골프장에서의 그녀와의 재회는 내 일생 가장 잊지 못할 소중한 만남이었다. 그리움이 쌓이고 쌓이면 그렇게 만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가 보다. 자식을 그렇게 묻어놓고 떠나야만 했던 미세스 김의 그 아픈 마음을 어느 누가 대신 할 수 있으며 만회할 수 있겠는가?

이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은 저마다의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에 오지만 대도시의 열악하고 위험한 우범지대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은 그동안 많은 희생을 치러왔고 미세스 김의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지나간 아픔과 통곡의 시간을 만회 할 수 있는 좋은 인연만 가득하기를 빈다.

<조태자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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