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열렸던 버지니아 주 총선의 주 하원 40지구에서 선전한 해롤드 변 후보의 노고에 감사한다. 비록 본인이 원하는 성과는 다 거두지 못했지만 선거자금의 절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현직 의원이었던 상대 후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것은 그가 그 만큼 훌륭한 후보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변 후보와 나는 서로 지지하는 정당도 다르고 사안에 따라 전혀 다른 정책적 입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그가 나와 같은 한인, 그리고 틴에이저 나이에 미국으로 온 이민자 출신 후보라는 것은 나에게는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 한인 동포사회의 정치력 신장은 단순히 구호로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 선거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기에 그의 출마에 감사했다. 모두가 이기면 더욱 좋겠지만 설사 지더라도 더 많은 한인들이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
현역의원인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캠페인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사실 민주당 후보로부터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민주당에서 25년 이상 선거에 도움을 받았었던 5선 교육위원 출신인 나에게 같은 당 소속 후보가 손을 내미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나는 선뜻 그를 도울 수는 없었다. 대신 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당신을 안지는 이제 2년 남짓이다. 그러나 변 후보와는 무려 25년이 넘는다. 그러니 내가 비록 민주당을 지지하더라도 변 후보에게 불리한 행동을 취할 수는 없다. 내가 중립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감사해야 한다.
변 후보로부터도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지역 공화당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 왔던 그는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내가 처해진 입장을 너무 잘 알기에 새삼 설명도 필요 없었다. 서운해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고마웠다. 사실 나보다 더 일찍 지역 정치 활동을 시작하며 한인 사회에 도움을 주어 왔던 변 후보는 내가 과거에 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격려를 마다 하지 않았었다. 내가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민주, 공화 양 당을 떠나 한인들은 꼭 정치에 참여하고 투표를 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던 그를 보며 나도 많이 배웠다.
변 후보의 상대 후보는 정치적 야심이 상당히 큰 사람이다. 그가 첫 도전했던 선거가 2018년의 연방하원의원 자리였다. 물론 당내 경선에서 실패했지만 그가 그 실패로 정치의 꿈을 접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도 올해 겨우 40세로 젊은 편이고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면서 로즈 장학생이었던 그는 절대로 주하원의원 자리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후보이면서도 보수적인 유권자들에게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던 경력을 내세울 수 있는 후보이다. 때가 되면 연방 상원의원이나 주지사 직에도 도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 변 후보의 강한 도전에 긴장했다. 그래서 겨우 임기 2년과 연봉 1만팔천불도 안 되는, 그리고 버지니아 주 전체에 100명이나 되는 주 하원의원 자리에 200만 달러가 넘는 선거자금을 투입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가 사용한 선거 자금은 변 후보 보다 자그만치 150만불 이상 많았다.
이러한 절대적 자금 열세에 변 후보는 선거전 후반 들어 TV와 인터넷으로 쏟아지는 네거티브 공격을 대항할 수가 없어 무너지고 말았다.
선거가 끝나고 한 열흘 쯤 지나 변 후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도 선거에 실패해 본 경험이 있는지라 어느 정도는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생각 외로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비록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이제 주지사 직이 공화당으로 옮겨 가게 되니 공화당 정권 내에서 분명히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나보다 연배가 몇 년 위지만 아직 충분히 일 할 수 있는 나이의 그가 능력과 소신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 한인 동포사회에서도 변 후보가 그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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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