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휴가 이야기

2021-11-27 (토) 송일란 /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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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시댁 식구들이 있는 뉴욕을 다녀왔다. 팬데믹으로 미루던 방문이었다. 어머님은 화상통화 속에서는 건강해 보이시더니, 실제로 뵈니 걸음걸이에서부터 기력이 많이 쇠해지셨다. 외향적이고 명랑하신 이모님은 여전하신 것 같아도 벌써 80이라고 하신다.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은 먹고 수다 떠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둘째 네는 그 사이에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몇 군데 보수하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사라는 게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경제적으로도 생각지 못한 돈이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보태주지 못한 게 이제야 맘에 걸린다.

막내 네는 지난 9월 물난리로 사업장에 물이 들어차면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주변 차들은 창문 있는 데까지 잠겨있었고, 사업장 안에 물이 들어왔다 나간 흔적은 참담했다. 뉴스로만 봤던 물난리가 형제에게 있었는데도, 마음 써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기계가 망가지고, 물에 망가진 것들을 버리고 치우며 고생했을 그 손길과 마음을 몇 마디 말로 위로하면서도 미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 집 이야기는 몇 달 전 겪은 대형교통사고가 화제였다. 모두들 그만해서 다행이라고 후유증을 걱정해준다. 이모님을 닮아 활달한 사촌 시누이 캐롤은 웃는 모습이 참 예쁘고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캐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었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엄마에게 자식 잃은 아픔을 줬을지도 모른다며 심하게 아팠던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저 어머나, 아이구, 세상에... 이런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형제들이 세상 살면서 서로 고생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별것 없는 감탄사로 서로 위로해주고, 그것밖에 한 것이 없는데도 참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해지고, 선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머님과 이모님이 우리를 위해 매일 기도하신다는 말씀 또한 너무 든든했다. 나는 이번 교통사고 때 이 정도로 다친 것이 내가 그동안 운동을 해서 단련한 근육이 있어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매일 기도해주시는 집안 어르신들이 있어서였다.

떠나오는 날, 비가 내렸다. 우리가 떠나서 그런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정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생체 리듬은 여러 가지로 힘든 상태였지만, 마음의 양식은 가득 먹고 든든해져 재충전되어 돌아왔다.

<송일란 /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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