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2021-11-26 (금) 이근혁 메릴랜드
크게 작게
그 분에 대해서 긴 시간 생각해봤습니다. ‘일이 힘들 때 강수진의 발을 보라.’

피나는 힘든 연습으로 지금의 그를 만든 상처투성이 발입니다. 고뇌의 발. 집념의 발. 발레를 사랑해서 그렇게까지 연습을 하며 살아야했고 그렇게 했으니 지금의 그 사람이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발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세계적인 훌륭한 선수가 될 수밖에 없음을 봅니다. 그 분을 보면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부모의 마음도 함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외국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 속을 20년간 썩이고 가정을 갖고 자식 없이 살아가는 훌륭한 최고의 발레리나에요.


부부가 애 없이 산다는 게 더 나이가 지나면 후회를 하려나. 그대로 행복하게 살려나. 주위에 가정을 갖고 불행히 사는 사람이 많듯이 애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 많겠지요. 결혼을 안 하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 많은데 무엇을 보고 판단을 할 수 있어요?

모든 게 자신의 마음에 달렸다는데. 멀리서 보면 행복해보이고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해 보이고 잘났으면 당연히 행복할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닙니다. 자신이 행복하면 행복입니다. 그 사람 말처럼 “단순하게 네 인생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당당하게 살아.”

내 시절의 내 주위에 일부러 애를 안 낳고 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못 낳으면 쫓겨나든지 소박을 맞고 살아갔어요.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사람도 당당히 혼자 살며 즐기는 사람이 주위에 너무 많아요. 시대가 변하면 삶도 바뀌는가 봐요.

그러나 부모 입장에 결혼하면 효자입니다. 자식까지 낳아서 손주 보여주면 속으로 감사를 외치며 삽니다. 자식들 때문에 오랜 세월 힘들게 살다가보니 지금은 그 당시가 떨어진 낙엽 추억이 됐습니다. 유연하게 타협 못하고 고집 부리며 산다는 게 힘들지만 시간이 지났으니 강수진 부모님 지금은 행복하실런지.

나는 이제는 제자리인 것 같습니다. 미국인 큰 사위가 집에 문제 생길 때 잘 해결해주고 요리도 잘하니 내 딸 편하게 해주고 고기 잘 구워줘서 내가 제일 좋고. 애를 안 낳고 개를 자식이라 기르니 개고기 좋아하던 내가 동물애호가가 돼서 품위 있는 사람으로 저절로 바뀌었어요.

작은 필리핀 사위가 미국사람인 양 인사도 미국식으로 하는 게 여전히 마음에 안 들지만 내 딸, 자기 아내에게 헌신적이고 손주들 기저귀 갈아주며 목욕시켜 주어가며 살아가는 게 참 고맙습니다. 그 정도로 감사하지요.

내가 쓸 돈 안 쓰며 손주 놈 기저귀도 사주니 할비 노릇 잘 하는 거 같아서 내가 참 대견하기도 합니다.

한국만 좋아하다가 미국도 좋아하고 필리핀도 좋아합니다. 세상 사람을 하나로 차별 없이 사는 통 큰 사람이 됐어요. 이미 자식 다 결혼시킨 사람에게 우습게 들릴 거고 아직 더 기다리는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그냥 살다보면 작게 좋은 점이 오고 그렇게 살다가 가면 될 겁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지금’을 최상으로 받아들임이 행복의 원천입니다.

<이근혁 메릴랜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