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인 코케인이 시어스 백화점 카탈로그에 올려져 팔리던 때가 있었다. 만능 가정 상비약으로 소개됐다. 건초열이나 목 아플 때, 편두통이나 신경과민, 불면증 등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선전됐다.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었다. 한 통에 50센트로 크게 비싸지 않았다. 1890년대의 일이다.
이 때 미국서는 10여년 동안 코케인 중독자 20만명이 새로 생겨 났다고 한다. 효능보다 더 심각한 부작용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코케인 생산과 유통은 법으로 전면 금지됐다. 코케인은 그 전까지 안과 수술의 국부 마취제에서 치통, 성기능 장애, 알코올 중독 치료제로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또 다른 마약인 헤로인도 마찬가지였다. 코케인과 비슷한 시기에 부작용 없는 진통제로 여겨져 인기를 끌었다. 모르핀 보다 중독성은 적으면서 진통 효과는 5배 정도인 것으로 평가됐다. 제약회사 바이엘은 헤로인 성분이 포함된 어린이 감기, 기침약 등을 개발했다. 숨겨져 있던 헤로인의 정체가 드러나자 연방 식품의약청은 헤로인도 1910년대 초 금지 약물로 지정했다.
약품과 의료기술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흑역사가 적지 않다. 19세기 후반에는 중국 이민과 함께 새로운 약 하나가 미국에 유입됐다. 당시 중국의 민간에서 사용되던 뱀 기름(snake oil) 이었다. 물뱀에서 추출했다는 이 기름은 오메가 3 함유량이 비교적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륙횡단 철도공사에 몰린 중국인 인부들은 고된 하루가 끝난 뒤 관절 부위에 이 기름을 문질러 바르곤 했다. 뱀 기름은 일부 소염효과와 함께 관절염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동양에서 온 신비의 약 ‘뱀 기름’은 골드 러쉬를 타고 서부 개척이 한창이던 그 때 전 미국에 퍼졌다.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에서는 방울뱀에서 뱀 기름을 추출하는 방법도 시연됐다고 한다.
뱀 기름은 만성 통증, 두통, 정력 감퇴, 신장 질환 치료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선전됐다. 하지만 식품의약청 검사 결과 당시 팔린 뱀 기름에는 뱀에서 추출된 기름은 한 방울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동물성 지방이 주성분을 차지했다. 미국에서 ‘뱀 기름’ , ‘뱀 기름 판매원(snake oil salesman)’이라고 하면 엉터리 약이나 제품, 사기꾼을 지칭하게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한때 각광받던 엉터리 치료술도 적지 않았다. 여성용 바이브레이터도 그중 하나. 이 골반 진동기를 사용하면 갖가지 부인병 치료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 졌다. 의사의 손을 대신할 수 있는 부인과용 의료기기로 받아들여졌다. 전전두엽 절개술(lobotomy)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술도 있었다. 이 수술은 안구 위쪽으로 얼음깨는 송곳을 찔러 넣어 뇌 앞 부분의 전전두엽과 눈을 연결하는 신경을 자르는 것이었다. 치사율이 15%에 이른다는 위험천만한 수술이었으나 중증 정신질환 치료목적으로 사용됐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 로즈마리 케네디도 이 수술을 받은 후 식물 상태로 생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뱀 기름’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연 600억달러에 이른다는 다이어트 제품 시장은 대표적인 곳중 하나다. 체중을 가장 쉽게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몸속의 수분을 빼내는 것이다. 물이 체중의 50~70%를 차지하고 있으니 체내 수분 빼내기는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며칠 설사만 해도 몸무게는 줄게 된다. 다이어트 약 중에는 탈수증을 부르는 위험천만한 ‘뱀 기름’들도 있다.
지금 추세 대로면 코비드19 원인균인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와 함께 갈 공산이 커보인다. 혹시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이라고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코로나 치료에 효능이 좋다며 한때 한인사회에도 처방전이 떠돌던 바로 그 말라리아 약. 지나고 보니 코로나 시대의 ‘뱀 기름’이었다. “인공지능 시대를 열었다는 21세기도 별 수 없었다”고 후대에서 말하지 않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