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 로스엔젤레스 총영사관입니다. 모든 통화 내용은 더 나은 서비스 개선을 위해 녹음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에 성공한 적은 결코 없다. 애당초 성공하리라 생각하고 시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할 수 밖에 없으니, 할 뿐이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보기 좋게 실패한다. 그리고 무한반복되는 통화 연결음만 하염없이 듣는다.
거창한 일을 시도할 때 펼쳐지는 상황인가 싶지만 LA 총영사관에 민원 전화를 거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매년 LA 총영사관의 민원 전화 먹통 문제를 다룬 기사를 쓰곤 한다. 그 말인즉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영사관 직원과 전화 통화가 어려워 불편을 느끼는 한인들의 불만과 제보들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기사를 쓰기에 앞서 실제로 LA 영사관 직원과 전화 통화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해보기 위해 전화를 걸어본다. 기자들은 평소 취재를 위해 영사들 또는 실무관과 연락을 주고 받기 때문에 영사관 대표전화로 전화를 걸 일이 없다. 그렇다 보니 영사관 직원과 전화 연결이 어렵다는 무성한 소문만 들었지 전화 먹통 현상을 직접 경험해 보진 못했다.
LA 총영사관의 대표번호 213-385-9300을 입력한 뒤 통화 버튼을 누른다. 통화연결음이 흘러나온다.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직원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한 10~15분쯤 통화연결음이 흘러나오더니 뚝 끊겨 버리는 전화. 두번, 세번 다시 전화를 걸어봐도 아예 통화연결음 조차 흘러나오지 않거나, 십여 분 뒤 전화가 자동으로 끊기는 일이 반복됐다.
전화 먹통 현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캘리포니아주 고용개발국(EDD)’과의 전화 통화도 이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적어도 EDD에 전화해서 대기를 하다 보면 마지막에는 직원과의 통화가 성사됐다. EDD와의 통화는 긴 대기시간을 견디느냐, 견디지 못하느냐의 문제였지 영사관처럼 통화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왜 LA 총영사관은 수년째 불친절하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는 불명예를 안은 채 부동자세로 있는가. 박경재 LA 총영사는 “민원 전화 문제를 부임 이후부터 개선시키려 노력했지만, 별다른 묘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하루에 1,000통이 넘는 전화를 직원 3명이서 소화하기 힘들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를 대상으로 한 자가격리 면제서 발급으로 LA 총영사관의 민원 전화 먹통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격리면제서 발급 전만 해도 하루 평균 300통씩 걸려오던 민원 전화는 격리면제서 발급 시작 이후 3배~5배 늘어난 1,000통~1,500통으로 급증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해결책은 간단해 보인다. 민원 전화만을 담당하는 직원을 채용하면 된다. 현재는 직원 3명이서 영사관에 직접 방문한 주민들을 상대하는 와중에 민원 전화를 응대하고 있다. LA 총영사관에는 일일 평균 250~300명의 주민들이 방문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현장에서 주민들의 민원 업무를 처리하면서 전화까지 받기란 원맨쇼에 가깝다.
눈에 보이는 해결책을 버젓이 앞에 두고도 LA 총영사관은 침묵한다. 인력 충원과 시스템 변경 및 도입은 예산 문제와 직결돼 외교부는 물론 기획재정부 승인까지 거쳐야 해서 해결이 어렵다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LA 총영사관의 인력 충원 요청에 한국 외교부는 ‘전 세계 수많은 공관들 중에서 직원 수가 많은 LA 총영사관에 인력 충원을 해주기가 곤란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LA 총영사관의 박민우 민원영사는 “본국에 인력 충원 건의를 계속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당분간 눈에 띄는 개선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외교부, 재외동포재단)는 미주 한인 동포들에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수년째 한인 동포들의 원성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무한반복으로 계속되는 총영사관의 통화 연결음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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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