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늘 두려움과 신비로움을 아우르게 한다. 새로운 세계에 맞닥뜨리는 불편함보다는 색다른 문화와 사람들, 펼쳐질 전경, 유적지 등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와 설렘이 있기에 막연한 불안감은 뒤로하고 또 비행기에 몸을 실게 된다.
오랜만의 가족여행이다. LA사는 아들 가족과 버지니아에 사는 딸 가족이 LA에서 합류해서 랜트한 두 차가 켈리포니아 해안을 누비고 다녔다. 덴마크 유적지인 솔뱅과 산타바바라의 올드 미숀, 산타모니카, 산타마리아 등 낯선 바람과 건조한 공기, 모래와 먼지, 해변의 비릿한 냄새 속에서 여섯 살이하 손주 네명과 2주간 머물며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가족애, 사랑을 느꼈다. 주로 꼬마들을 위주로 비치, 동물원, 수족관, 사이언스센터, 역사적 유적지, 미술관이 주 관광지였지만, 아들과 딸이 아빠생일을 축하한다고 준비한 ‘서프라이즈 여행'이 대견하고 감사할 뿐이다. 고흐를 좋아하는 내게 이번 여행의 백미는 단연 LA 인근 에나하임에서 열린 ‘반 고흐 전시회'였다.
네덜란드 출신인 반 고흐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37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800여개의 오일 페인팅을 포함해 2,000여개의 작품을 남겼다.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한 평생 가난 하고 고퉁을 겪으며 살았지만 신학서적과 문학작품을 탐독하고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꿈을 꾸던 열정적 화가이다.
삶의 대부분을 종교적이고 관념적 가치를 추구했던 그는 가치없는 그림이라도 돈을 벌기위해 감언이설로 팔아야 하는 화상의 생활방식에 염증을 느끼며 엘리트 중심적인 그림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했다.
반 고흐의 소명은 예술울 통해 인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었고 자신 역시 사람들에게 마음이 깊고 따스한 사람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원래 목사가 될 계획으로 벨기에에서 평범한 전도사로 일하면서 농부들 사이에서 흐르는 소박하고 진솔한 모습을 그림에 담고싶어 했었다. 그는 편지에서 “농부 그림에서 베이컨 연기, 감자찌는 냄새를 느낄 수 있으면 좋다. 마굿간에서 거름 냄새가 나는 것도 무척 좋다. 그게 마굿간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라고 썼다. 고흐에게 신은 자연이었고 자연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는 밀레의 영향을 받아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길 좋아했는데 가까이서 그림을 그리던 친구 고갱은 기억에 의존해서 창의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을 선호하는 등 서로가 의견 충돌이 많았다. 고흐는 정신적 발작을 일으키며 귀를 잘랐던 불운의 화가였지만 죽은 이후 가장 영예를 누린 화가이기도 하다. ‘사이프러스나무'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침실' ‘해바라기' ‘구두 한 켤레' ‘자화상' ‘감자먹는 사람들' ‘밤의 카페 테라스' 등 수많은 명작이 있지만 유일하게 팔렸던 그림이 십여년 전 모스크바의 푸쉬킨 박물관에서 보았던 ‘붉은 포도밭' 이라는 것에 가슴이 아파온다.
전시회는 ‘Starry Starry Night' 등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몰입형 (Immersive Van Gogh) 미디어 아트형태로 360도 프로젝션을 통해 움직이며 입체적으로 고흐의 명작품을 바닥과 벽에 영사해서 거대한 작품안으로 빨려들게 만드는 독특함이 있었다. 고흐는 살면서 수많은 편지를 남겼다.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도 그는 “폭풍의 하늘에 휘감긴 밀밭의 전경을 그린 이 그림으로 나는 나의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자신의 감정을 테오에게 표현헸다. 안타깝게도 평생 형을 후원했던 동생 테오도 형이 죽은지 6개월 후에 세상을 떠나면서 테오의 부인 요한나 봉허가 세상에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알리고 그의 친구들과 동생들, 특히 테오에게 쓴 많은 편지가 출간되면서 세계적인 화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고흐는 정식 미술학교는 나오지 못했어도 끝없는 노력과 변화를 모색하며 천재적인 예술성을 후세에 남기고 있다.
아직 어린 손주들이지만 이런 전시회와 여행을 통해서 그 애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조금이나마 사고의 지평이 넓혀질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은 가족 모두의 보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천재화가 고흐는 비록 살아서 인정을 받지 못했어도 사후에 현대 미술사상 가장 위대 하고 영향력있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가 되었고 그로인해 우리 인생에 희망과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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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