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내가 꾸는 꿈이 있다. 하룻밤이 아니라 제법 오래 전부터 꾸어 오던 꿈이다. 들으면 정말 ‘꿈’ 같은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용은 이러하다.
미국 고등학교 수업에서이다.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한국의 ‘십센치’라는 밴드가 부르는 노래 ‘10월의 날씨’ 뮤직비디오가 눈 앞에 크게 다가온다. ‘오늘의 날씨는 그리 맑지 않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 포근합니다…. 용기를 내 거리를 나와보니, 괜히 나만 우울했나 봐. 젖은 우산 같던 마음도 마를 것 같아.’ 약간 가라 앉은 느낌을 주지만 가사, 음악 모두 내 가슴에 잘 안착된다. 나 아무래도 가을을 타나 보다.
그 다음에 또 다른 비디오 클립이 소개된다. 모래시계의 명장면 중 하나. 태수 역을 맡은 최민수가 사형장으로 나가기 전에 검사인 친구 우석 역의 박상원과 대화를 갖는다. “나, 떨고 있냐…?” “너, 괜찮아.” 그 후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도 나온다. 아버지가 이제 앞을 잘 못보게 된 딸 송이를 줄로 붙잡아 이끌고 걸으면서 ‘사철가’를 부른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만은, 세상사 쓸쓸허드라.’
두 학기, 네 쿼터로 나누어져 있는 이 수업의 첫 쿼터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소개된다. 학생들은 K-영화, K-드라마, K-팝을 위시해 한국의 가곡, 동요, 창, 판소리와 코미디도 접해 본다.
둘째 쿼터에서는 말하기와 듣기에 초점을 맞춘다. 간단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이슈 토론, 정책 보고, 마케팅, 강의, 뉴스 발표 등을 해 본다. TV방송도 보고 라디오도 듣는다.
그 다음 쿼터에서는 읽기에 집중한다. 한국문학 등이 소개된다. 박경리의 ‘토지’와 윤동주의 ‘서시’가 포함된다. 또한 수필, 신문, 잡지, 역사서, 고전, 전문서적, 논문 등도 살펴 본다. 그리고 마지막 쿼터에서는 쓰기 위주 수업이다. 보고서, 기획서, 편지, 일기, 논술, 수필, 시, 소설 등을 시도해 본다.
이 수업은 한국어 헤리티지 스피커들 즉 한국어가 모국어이든지 한인계 학생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 한국어를 부모로부터 배워 본 적이 있는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다. 아직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학군들 중에 하나인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를 비롯해 미국 어느 곳에서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도입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지난 몇 달 동안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의 외국어 교육 담당자와 논의를 해 왔다. 주미한국대사관의 관계자들도 환영하고 후원하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교육청 담당자의 긍정적 반응이 이제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다.
교육청에서는 정기적으로 교과과목을 검토하는데 검토위원회가 내년부터 페어팩스 카운티 고등학교에서 현재 Level 1 부터 4까지 네 단계 수준별로 제공되는 한국어 수업에 Level 5를 추가하고, 헤리티지 스피커들을 위한 Level 1 수업도 제공하는 것을 교육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그 후 어제 열린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그 건의가 정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정말 기뻐해야 할 일이다. 지금까지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의 다른 외국어들에 비해 수준별로 제공되는 수업이 한 단계 부족했던 한국어 수업이 이제 Level 5 추가로 제대로 자리를 잡아 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어에 국한되었던 헤리티지 스피커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한국어가 추가된다는 것은 그 만큼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다.
물론 앞으로도 할 일은 많다. 우선 커리큘럼을 개발해야 한다. 가르칠 교사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수강학생이 없으면 수업을 실시하지 못하므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하다.
이제 Level 1수업을 제공하는 단계이기에 아직은 내가 꾸던 꿈과 같은 내용의 수업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나는 요즈음 이러한 꿈을 꾸면서 많이 들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분 좋다!
<
문일룡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