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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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께 드리는 품의서

2021-11-10 (수) 이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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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태민안(國泰民安)에 여념이 없으실 대통령님의 건강하심을 기원합니다. 대통령님의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가 있다"는 금쪽같은 말씀을 새기며 월남 파병 전우의 일원으로서 대통령님의 말씀이신 “정정당당한 비판을 하자"라는 취지로 졸필(卒筆)을 올립니다.
저는 1966년 9월부터 1967년 10월까지 월남 제 1번 도로를 개통시키기 위해 프랑스 군이 전멸(당시 이야기)했다는 ‘죽음의 계곡’과 닌호아, 투이호아에 참전했으며 국가보훈처가 인정한 5급 상이용사 육군 병장이었던 이동원 입니다.

낮에는 따이한(大韓)을 환호하고 밤에는 모두(제 경험상) V.C(베트콩)로 변하는 전선 없는 월남에서 막사 없이 C-레이션 박스를 깔고 대나무 지지대로 받친 판초 우의 밑에서 교대로 잠을 자며 일년내내 야전 식량으로 때우고 우기(雨期) 때는 참호에 물이 배꼽까지 차올라오고 원형 철조망 부근에 구덩이를 파고 모기를 쫒기 위해 궁둥이를 흔들어대며 용변을 해결하고는 했습니다.
흙구덩이를 넓게 파고 판초와 판초를 연결한 내무반 아닌 내무반에서 으레 고향의 맛과 술 이야기, 감춰 두고온 여자 이야기를 하다가 누가 먼저인지 잠이 들곤 했던 옆자리 전우가 부비트랩에 살점들이 나뭇가지에 널리고 눈을 감지 못한 전우의 정글복 윗주머니 속에 고여 있는 걸쭉한 피 속에서 유품을 챙길 때는 아무나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상황이 끝나 여명이 걷히고 G.I가 지원하는 헬리콥터 그물망에 팔다리가 뻗힌 채로 실려 가는 전우의 시체는 내가 그들이었고 그들이 나였습니다. V.C나 V.C처럼 보이고 의심되는 월남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죽여야만 했던 우리 모두는 ‘걸어 다니는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가끔 꿈에서도 나를 괴롭히는 전투 경험을 장황히 말씀 드리는 이유는 대통령의 말씀대로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 되기 때문입니다. 월남에 파병되기 전 우리 모두는 G.I와 같은 대우와 계급별로 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미군이 받는 월급은 1인당 평균 1083달러였고, 한국군 월 평균 월급은 1인당 116.81달러(1966년에 맺은 브라운 각서)로 차액은 매월 966.19달러입니다.


월남 전쟁이 끝날 때까지 8년 8개월 동안 파병 용사 32만 5천여 명에게서 매월 966.19달러를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는 박정희의 군주(軍主) 국가 대한민국이 갈취한 돈이 됩니다. 이는 국제사회의 수치요, 국가의 치욕이며, 국가의 범죄 행위입니다. 1960년대 우리는 한 끼니가 절실했습니다. 그때는 북한이 남한보다 풍요롭게 살고 있을 때입니다. 그 가난한 시절 우리의 피 묻은 돈으로 경부 고속도로가 깔리고 1, 2차 경제 개발의 마중물이 되어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기회는 평등하고 공정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주 4.3항쟁, 4.19 혁명, 5.18, 서해 해전, 세월호 아픔, 잊혀가는 국가유공자를 찾아 걸맞는 보상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보훈처에서는 6.25때 포로가 된 인민군이나 군무위원도 일정 요건에 해당 되면 보상을 하고 황장엽을 현충원에 묻어주고 태영호에게 비밀 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우리는 국가 보상이나 국가부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등권 원칙에 의해 보상, 부조가 아닌 국가가 떼어먹은 내 돈을 달라는 것뿐입니다. 세계 경제대국 10위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외세에 시달리며 통일 하겠다는 남의 나라 국민들을 죽이고 죽은 피 범벅이 된 내 돈을 이제는 돌려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의 책임이고 국가가 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군인 봉급을 착취하는 것은 중대 범죄 입니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의 월급을 떼어먹은 일본기업들의 국내 재산을 당당하게 압류했습니다.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라고 국가 보훈처는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대장과 5천2백여 명이 전사한 전투수당은 국가 자본이 되어 경제 부흥으로 이어질 때 청와대에서는 일본에서 공수한 생선회와 양주에 취해 만주국 동료들과 함께 ‘기미가요’를 부르던 그 시절 ‘문재인’ 학생은 국내법, 국제법, 인권을 공부했습니다.

강의 뒷 물결이 앞 물을 밀어낸다는 ‘장강후랑 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는 말을 좋아하신다고 압니다. 그렇습니다. 어디 강물뿐이겠습니까. 우주 만물의 정해진 순리입니다. 강물처럼 뒷 역사가 앞 역사를 밀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은 국민들로부터 기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20대 초반 전우들은 이제 쇠년(衰年)을 넘어 앞서니 뒷서거니 땅보탬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코뿔소(국가권력)가 개미(국민)에게 나 같은 아이를 낳아야 된다는 옛날이야기는 없어야 됩니다. ‘운명’이란 책에 “국민들은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라고 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국민의 구성원으로서 늦었지만 희망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활인검(活人劍)을 휘둘러 희망을 주시기 바랍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바라며 병장 이동원 품의(稟議).

<이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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