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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우리에게

2021-11-10 (수) 구자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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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오랜만에 이른 시간에 눈을 뜨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부쩍 차가워진 바깥 공기를 맞으며 할리웃으로 향했다.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올해 두 번이나 연기되었던 ‘제36회 2021 LA마라톤’이 지난 7일 드디어 열렸다.

세계 각국에서 온 1만3,0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했고, 아침 공기는 차가웠지만 마라톤을 뛰는 선수들의 뜨거운 입김과 구경꾼들의 열띤 응원으로 현장은 열기로 가득 찼다.


오전 7시40분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할리웃과 하버드 구간의 허전한 도로를 멍하니 쳐다본지 몇 십분 째 드디어 여성 선수 한명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응원단들의 함성과 응원소리가 열띠게 들려왔지만, 선수는 그저 앞만 보고 묵묵히 길을 뛰어갔다.

한 여성선수가 지나가고 또 몇 분 뒤 점점 많은 선수들이 같은 구간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뛸 때 각자의 표정, 차림새, 다리의 보폭, 뛰는 자세 등이 각기각색이었지만 모두에게서 공통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다들 앞만 보고 자기 자신과 선의의 경쟁을 하며 결승점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는 것.

왠지 모르게 마라토너들이 묵묵히 뛰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울컥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참가자 모두와 자신을 견주어 경쟁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상 자기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있다는 점이 마치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그들은 분명하게 주변을 의식하며 남들과 싸우고 있지 않았다. 다른 주자의 속도와 지구력을 부러워하기는커녕 자신만의 레이스에 100% 몰입한 모습만 보일뿐이었다.

가쁘게 헐떡이는 숨과 점점 타 들어갈듯 한 다리의 고통을 견디며 자신과 싸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빈틈없이 완벽했고, 생김새는 다를지라도 모두가 눈부시게 빛이나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그들만의 조화를 이뤄냈다.

비교는 판단의 한 형태로 우리 삶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법’의 저자 댄 그린버그는 자신의 책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삶을 정말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연습문제를 내줬다. 한 예로 모차르트가 열두 살 나이에 이루어놓은 업적과 독자가 열두 살에 이루어놓은 업적을 비교한 후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실험에 참가한 독자들은 어김없이 비참하게 느끼게 되는 것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하버드대 교수이자 현재 토론토 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조던 피터슨은 자신이 집필한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내용을 강의하면서 비교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를 나눈다. 그는 자신과 꽤 오래 함께 일하던 남성 지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가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파운더 인스티튜트’라는 회사를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해 5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 안에 165개의 도시에 기관을 세우고, 성공적인 회사 2,500여 곳을 배출해내는 등 여러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로부터 고민을 토로하는 전화를 받은 피터슨 교수는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교수에게 “나의 룸메이트에 비하면 나는 살면서 한 게 거의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전혀 만족하지 못하며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교수는 그의 룸메이트가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였다고 말하며 관중의 허탈한 웃음을 자아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나와 남을 비교하며 살아간다. 내 손에 든 떡보다 남에 손에 들린 떡이 더 크고 탐스러워 보일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비교로 남 혹은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며 이미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에 불필요한 스크래치를 내기도 한다.


그날 마라톤을 보며 마음에 감동이 찾아온 것은 우리 모두는 비교하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각자의 노력만으로도 넘치게 찬란하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소셜 뉴스 웹사이트 레딧(Reddit)에서 많은 공감을 얻으며 화제가 된 글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시간대에서 일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시간에 아주 잘 맞춰서 가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뒤처질까 두렵고, 앞서기 위해 늘 초조한 사람들의 마음에 평온을 선사한다.

그날 마라톤의 모든 참가자들은 장시간의 레이스 내내 관중의 열띤 응원을 받고, 그에 힘입어 모두가 각자의 특별한 때에 결승점에 도달했다. 불필요한 비교는 이제 접어두자. 각자의 인생에서 레이스에 열심히 임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

<구자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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