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밴드 이야기
2021-11-08 (월)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시카고에 살 때, 하루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보내온 팸플릿(pamphlet)에서 뉴 호라이즌이라는 시니어 밴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주 모여서 연습을 하는데, 누구나 원하는 악기를 가지고 오면 기초부터 가르쳐 준단다. 집에 있던 플룻을 들고 가서 소리 내는 것부터 배우며 재미있게 시작을 했다. 얼마 후 중급반이 된 후로는 연말이면 너싱홈 같은 데를 찾아가 크리스마스 캐롤을 중심으로 연주회를 하기도 했다. 듣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모두 시니어였지만,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 플룻 파트는 단합이 잘 되어서, ‘런치번치’라는 이름으로 가끔씩 모여 점심을 같이 하기도 했다. 물론 비용은 철저히 각자 부담이었고.
다음 단계로는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었던 남편과 같이 커뮤니티 칼리지 밴드에 들어갔다. 학점 없이 한 과목만 듣는 대학생이 되어 청년학생들 틈에 끼어 앉아 연주를 하게 된 것이다. 연습은 직장인들도 올 수 있도록 밤에 해, 연습하러 갈 때면, ‘우리 밤무대에 서러 간다’고 농담도 하곤 했다. 옆에 앉게 된 키 크고 예쁘게 생긴 젊은 백인 여성이랑 친하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 플룻을 불고는 어른 되어서 다시 시작했단다. 좀 가깝게 된 후에 직업을 물어보니 경찰관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남편도 경찰이란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괜히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커뮤니티 칼리지라고는 하지만 어찌나 실력들이 좋은지, 이런 조그만 초급대가 이 정도면, 정말 잘한다는 대학들은 어떨까 상상이 안되었다. 솔로 하는 학생이 하도 잘 불길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숨도 안 쉬고 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연습’이라고 답을 했다. 연습이라고는 별로 하지도 않으면서 ‘나도 젊어서 시작했으면 좀 더 잘 불지 않았을까’ 하며 나이탓만 하고 있던 내게는 충격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온 후 하루는 그 여자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 커뮤니티 칼리지 신문 표지에 우리 밴드가 나왔는데, 마치 내가 독주라고 한 사람처럼 크게 찍힌 사진이 나와 있는 것을 친절하게도 보내준 것이었다. 아마도 그 학교측에서는 이렇게 아시안도 함께 했다는 걸 보여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여기 와서도 뉴 호라이즌 밴드를 찾아 보았는데 가까운 거리에는 없어, 지금은 그때의 추억만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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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