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5일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다. 크로스토퍼 컬럼버스가 실수로 인도인줄 알고 도착한 아메리카가 우리가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에게는 기막힌 악연과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1492년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들은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했지만 이미 이곳에는 수천년 전부터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 숫자가 수천만 명에서 1억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후 미국의 계속된 인디언 말살정책으로 지금은 대략 4백만명 정도가 남아있으며 그마저도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이라는 백인들이 쳐놓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살면서 술과 마약을 벗 삼아 아무런 희망도 낙도 없는 슬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인디언들의 현실이다.
이 땅에는 수많은 소수민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지만 인디언들처럼 철저히 잊혀진 민족은 없다. 미국의 주류 언론도 그들에게만은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외면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컬럼버스가 첫발을 내디딜 때 이 땅의 주인인 인디언들에게 허락을 받고 들어왔는가? 비자나 영주권을 받고 들어왔는가? 자유와 인권을 최고의 가치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세계의 경찰을 자청하는 미국이 세계평화를 논하기 전에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에게 저지른 무자비한 살육과 비인권적 행위에 대한 비판과 자성,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오래전 캘리포니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어느 사제는 스페인 본국에 보낸 편지에서 “여기 있는 인디언들은 이미 산상수훈을 다 지키고 있는듯하여 그들에게 무엇을 선교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너무도 선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조건 없이 나누며 천국시민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서부개척이라는 미명으로 자행된 인디언 추방과 학살, 말살 정책은 저항하는 인디언들의 여자와 어린이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하는 백인들의 잔악함을 드러낸 것이었다.
실제로 1830년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 강제이주령이라는 악법을 제정하고 동남부 더운 지역에 살던 인디언들 1만5,000명을 1,600킬로미터가 넘는 오클라호마까지 이주시켰는데 그때 맨발로 행군을 하는 5개월 동안 추위와 굶주림, 질병, 학대, 고문, 피로누적 등으로 체로키 부족 인구의 ¼이 넘는 4,000명 이상이 죽었다. 이 한 맺힌 길을 그들은 ‘눈물의 길’이라고 부른다.
호주나 캐나다에서도 원주민들에 대한 백인들의 불평등과 말살정책이 만연했지만 미국보다 앞서 그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 그에 따른 새로운 정책으로 아직도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2등 국민이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나 미국에 비하면 그래도 사정이 나은 것으로 보인다.
버려진 땅, 물도 없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땅에 버려진 그들… 인간적 삶이란 기대할 수 없는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정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인디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미국인은 불법 체류자들이다. 1620년 백인 필그림들이 플러머스 항구에 도착하여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갈 때 인디언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추수감사절에 과연 누굴 위해 감사해야하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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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