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북새통 가운데서도 세월은 여전히 흘러 두번째 가을을 맞았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한편 사색과 우수에 젖는 감상의 계절이기도 하다.
결실을 맺고 황금빛 고운 옷으로 갈아 입은 나무도 바람결에 그 잎이 하나, 둘씩 떨어지면 결국은 앙상한 나목이 되어 적막한 월동을 준비하듯이,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산 사람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야 되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딸 셋을 둔 큰아들 부부, 그리고 사돈 내외분과 같이 단풍이 곱게 물든 웨스트 버지니아의 Black Water Falls 주립공원에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애팔레치안 산맥 자락에 자리 잡은 이 공원의 불루리지 산에는 햄록 나무와 붉은 가문비 나무가 많다는데, 땅에 떨어진 침엽이 물에 녹아 타닌산(tannic acid)이 생기고, 그래서 폭포와 강의 물 색깔을 검게 물들게 하는 탓에 공원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이번 주립공원 여행이 여덟번째로 기억되는데, 약 2년 반 전에는 미국에 사는 온 형제 자매들 가족과 같이 2박 3일의 즐겁고 뜻깊은 시간을 보낸것이 많이 생각난다. 목사가 두 명 있는 우리 가족들은 말씀, 찬양, 기도, 그리고 간증으로 은혜로운 예배를 드렸으니, 말하자면 가족 수양회로 부를 수 있겠다.
이번에도 같은 일정으로 오래전에 나무로 지은 캐빈에 머물렀었는데, 캐빈에는 주차장, 피크닉 테이블, 바베큐 그릴, 그리고 땔감 나무를 쌓아 놓은 창고가 딸려 있다.
오랫만에 야외에서 맛있는 바비큐를 즐겼고, 벽난로에 나무를 태우며 고구마, 감자를 굽고 머쉬멜로우을 꼬챙이에 꽂아 구워 먹으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은 이 아름다운 추억을 오래 간직할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아쉽게도 가끔 캐빈 뒤뜰에 산보 나오는 사슴가족은 이번에는 볼 수 없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상징 표어가 ‘거의 천국(Almost Heaven)'인데, CD에서 흘러나오는 존 덴버의 노래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들으며 단풍으로 곱게 물든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릴 때와, 짙푸른 하늘과 주황빛으로 물든 단풍이 아름답게 대조되는 화창한 날에 캐빈 뒷뜰에서 깔깔거리며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이 표어가 새삼스레 생각났다.
한 가지 특벽히 기억나는 일은 우리가 사는 동네는 오염된 공기 탓인지 별을 보기가 힘든데, 이곳에서 밤 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던 별을 볼 수있었던 것이다.
밤 하늘의 별은 언제나 우주의 신비와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움으로 나를 이끈다. 창세기에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고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신 말씀이 나오는데, 그때 아브람이 보았던 별들도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는 약 천억개의 별로 이루어진 은하수가 또 천억개나 된다니, 나의 작은 머리로는 도저히 감을 잡을수가 없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천문학자들의 이야기도 이해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들이 결혼 12주년을 기념하며 같이 간 이번 여행은 우리 부부에게도 아름답고 흐뭇한 추억을 심어 주었다.
화창한 날씨에 아무 사고없이 화목한 분위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한 가지 아쉬움은 콜로라도에 사는 작은 아들이 함께 할 수 없었던 점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약 3시간 남짓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이 주립공원을 가족 나들이 장소로 아낌없이 추천하고 싶다.
<
박찬효 / 약물학 박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