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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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단풍

2021-10-19 (화) 전종준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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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나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사무실 창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만보던 골프장이 ‘그림의 떡’이었는데 이젠 내가 골프백을 매고 즐기고 있다.
그동안은 일이 먼저라며 선뜻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건강이 걱정되어서인지, 주위의 권유로 잠깐 짬을 내어 9홀을 걷게 되었다. 아버님이 살아생전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이제사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걷는 시간을 손님과의 약속 스케줄이라 생각하며 행동하기까지 거의 3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혼자 골프라니… 상상도 안해 본 일이고 왠지 새로운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았다. 망설임의 시간이 길어지자 주위에서 일단 나가보고 그 다음을 걱정하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나가게 되었다. 이제 골프를 정식으로 가까이 한지는 몇 개월도 안되었고 그나마 뜸뜸이 치는 바람에 내 골프 실력은 정말 별로였다.

그래서 지인들이 같이 치자고 해도 민폐가 될까 염려되어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혼자 모르는 사람들과 치게 되면 그나마 부담이 덜 될 것 같아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웬걸… 처음엔 쑥스럽기만 하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굿 샷’을 외쳐주고 혹여라도 실수하면 한번 더 치라고 권유도 해주었다.
주중에 낮 시간이라 그런지 시니어분들이 많아서 공을 찾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난 내 공의 위치를 확인만하고는 그 분들의 공을 찾기에 바빴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고맙다고 인사하고 같이 카트를 타지 않겠냐고 하고 서로 통성명도 하면서 금방 친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 이런 거구나!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도 내가 먼저 다가가 작은 친절을 베풀면 그들도 자연스럽게 내게로 다가와 웃고 있는 것이다.
손이 짧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짧아서 선뜻 타인에게 먼저 마음을 열지 못했던 내가 골프장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이 조합이 너무 좋다. 끝날 때 쯤이면 헤어지는 것도 섭섭해하고 다음에 꼭 다시한번 만나면 좋겠다고 인사를 나눈 뒤 헤어진다.


이렇게 골프를 치다보니 안 보이던 자연도 보이고 인생도 생각하게 되고 처음보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골프장을 걸으면서 그동안 별로 민감하지 못해 느끼지 못했던 나무 색깔들도 눈에 들어오고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뭇잎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봄의 연녹색은 희망을 주는 듯 하고 여름의 짙푸른 녹색은 힘을 나게 하고 가을의 단풍은 어찌나 화사한지 눈을 물들게 한다. 다 떨어진 나뭇잎으로 눈을 받아들이는 나무의 겨울은 얼마나 근사한가!

이제 나이가 들어 가을에 접어든 내 모습은 과연 이 가을의 단풍처럼 아름다웁기만 할까? 바쁘게 달려만 온 내 삶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찌 비춰졌을까?
사실 살아 있는 오늘이 제일 젊고 제일 아름답다고 하던데 난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내 자신을 돌아보고 책임져야 하는 시간이 내게 다가 온 것이다.
앞으로 남아 있는 내 삶에 조금 더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앙상한 가지라도 눈발을 소리없이 받아들이며 멋있고 단단하게 서 있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더욱이 나무잎처럼 아름다운 단풍을 매년 장식할 수 없는 육신이지만, 마음의 단풍이라도 단장하여 변함없는 화사함을 보여줄 수 있다면 내 남은 인생은 더없이 아름다울 것 같다. 정녕 마음의 단풍은 나와 너를 배려하는 긴 마음이 아닌가 싶다.

<전종준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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