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말부터 넷플릭스(Netflix)에서 방영되는 ‘갯마을 차차차’라는 한국 드라마를 보았다. 아름다운 바닷가를 배경으로 ,시골의 남을 배려하는 젊은 청년과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한 깍쟁이 여자 치과의사의 로맨틱 코미디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집에서만 지내던 청취자들에게 시원한 바다와 시골의 따뜻한 인심을 보여주는 신선한 작품인데 , 상담 전문가인 우리 며느리에 의하면 이 드라마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 청년의 모습에서 내 친구의 배려하는 모습과 그 치과의사에서 나의 젊을때의 이기적인 모습을 상기해 준다.
‘배려’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거나 도와준다”고 나온다. 크리스찬의 단어로 바꾸면, “조건없는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우리 딸의 오케스트라 경연 대회에 참석한 나는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던 것 같다. 모르는 여자분이 다가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떤 책을 읽냐고 물어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30여년 넘게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대화 중에 우리는 서로 나이 차이도 있고, 졸업한 학교도 다른데, 우리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에서 내가 좋아하던 강사분과 그 분도 성경공부를 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친구의 주선으로 우리는 그 강사분을 모시고 네 부부가 매달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그 모임 중에 그 강사분과 그 부인과 딴 분의 세 분이 이미 하나님 나라로 떠나시는 슬픔도 있었지만, 우리는 지금도 그 모임을 계속 하고 있다.
나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알려 준 것도 바로 그 친구이다. 그 분이 자랄 때 자기 나이 비슷한 여자아이가 자기 집에서 식모로 일하는 것이 너무 불쌍해서, 부엌에서도 도와주고, 시내 버스를 타고 학교 다닐 때, 만원버스의 문에 매달리는 차장들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고, 그 얘기를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통해서 배려를 잘 모르던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나에게는 태어날 때 부터, “정자 언니”라고 부르던 식모 언니가 있었다. 나를 너무 예뻐했고, 나를 업어주던 기억이 있다. 내가 4살때 있었던 1.4후퇴의 전쟁중에 ,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와 나는 정자 언니와 함께 친척이 보내주신 ‘찝차’로 피난을 갔는데, 차멀미를 하던 그 언니가 생각난다. 우리 집을 떠난 후에도 나를 못 잊어, 나의 국민학교 졸업식에도 찾아온 그 언니의 사진을 얼마전에 우연히 보았는데 , 나보다 나이가 별로 많지 않았던 그 언니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내가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대학을 다닐 때만 버스를 탔던 나는, 그 만원버스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내 팔목시계나 구두가 망가질까 봐 신경을 썼지, 문에 매달린 나보다 어린 여자 차장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참으로 생각이 부족했던 대학생이었나 보다.
남을 배려하는 좋은 친구 덕분에 교회에서 봉사 생활과 성경공부를 더 열심히 참석하게 되었고, 내 생일이나 , 우리 집안의 경사에도 같이 즐거워 하며 정성껏 선물도 챙겨 주어서, 우리 집에는 그 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이 곳곳에 눈에 띤다. 그 친구에게 그동안 받은 많은 사랑에 나는 항상 감사하고, 그 친구를 나에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결혼 초부터 한 집에서 시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껏 모시던 그 친구는 요즘에는 백인 사위, 큰 딸및 손녀들과 행복하게 살면서 집안에서 사랑을 베풀고, 교회에서도 남을 위해 봉사하며, 지금도 또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겸손하게 사랑의 교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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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자 (비엔나,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