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의 발명은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와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를 필두로 한, 소위 ‘맨해튼 프로젝트’라 불린 비밀 계획을 주도한 로스 알라모(Los Alamo) 연구소 과학자들의 연구의 결실이다. 원폭 연구는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파시즘의 종식과 인류 문명 보호라는 두 명제 하에 시작되었지만 엄청난 인명살상으로 그들은 지하에서 얼마나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을까?
원자폭탄을 실제 투하한 조종사가 그 후 남은 일생동안 죄책감에 사로잡혔었다는 보도도 있었음을 알고 있다.
반면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 출신 노벨 경(卿)은 죽기 전(1895년 유언) 인류에 공헌한 위대한 인물들을 다섯 분야(1969년부터 경제 분야 추가해서 6분야)에서 선발, 세상에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바람을 사후에까지도 실천하고 있는 위대한 발명가(화학자)인 동시에 선각자이기도 하다.
1901년을 시작으로 매년 생리, 의학상을 필두로 물리, 화학, 경제, 문학과 평화 등 각 분야의 영예의 수상자들이 세상에 알려지면 본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가 소속된 대학이나 연구소, 단체 등도 함께 명예를 자연적으로 공유하게 되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수상자들의 연령들을 보면 40대의 젊은 신예는 물론 80-90대의 노학자들이 포진해 있는 것을 보면 한 분야에서 일생을 바친 공로를 세상은 결코 외면하지 않고 있음을 안다.
본래 진정한 과학자들은 인류의 삶의 질을 그들의 연구로 향상시키려함에 근본 목적이 있는 것이지 영리에 목적을 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전염병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백신을 발명한 과학자에게 기자가 “왜, 특허출원을 하지 않느냐?”고 질문했을 때“특허권자는 모든 인류이다!”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음을 볼 때 자본주의 사회라곤 하나 근래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한 제약회사들의 행태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임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학, 인문(문학), 사회, 경제 분야 중 문학 분야에 늘 신경이 가는 이유는 물질적 삶의 풍요도 좋지만 정신적 삶의 조명이 더욱 중요하며, 실은 정신적 바탕 후에 물질적 현실이 들러리 되는 것이 아닐까 하기 때문인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금년도 수상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Zanzibar) 군도 출생으로 영국 캔터베리의 켄트 대학 영문학과의 식민지 후기 문학 교수인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이다.
1948년생의 은퇴 교수, 영어권 유색 소수민족, 아직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그의 작품세계가 일관되게 이민자로서 같은 처지의 피난민들의 고난과 식민주의 민낯을 깊은 고뇌와 통찰력으로 예리하면서도 감성적, 열정적으로 표현했음이 선정 이유였다고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발표했다.
우리 조국의 훌륭한 문학인들이 많음에도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구미 영어권이 아니라서라고 생각된다. 하루빨리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2-3세 문학인들의 출현을 고대하며 그들의 번역문학 발전의 기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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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의사/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