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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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공포

2021-10-05 (화) 이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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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의 일종인 향수는 알코올 성분에 화학적 냄새를 섞어 만든다고 한다. 자고로 내려오는 자연적인 향수는 계설향, 침수향, 정자향, 전단향, 안식향으로 오향(五香)으로 불리며 이들 향기는 자연에서 채취하는 순수한 냄새에 속한다.
이러한 냄새는 문명을 지배했고 종교를 지배하기도 했다. 또한 냄새는 입맛을 지배했고 여자의 신채기(辛菜氣)는 뭇 남자들의 본능과 마음을 지배한다. 어느 누군가 “냄새를 지배하는 자는 사람의 마음을 지배한다"고 했듯이 냄새는 음식의 맛을 지배하고 뭇남뭇녀들의 사랑을 지배한다.

백약지장(百藥之長)인 잘 익은 술의 향기에 나는 꼼짝없이 포로가 된다. 꽃 냄새를 비롯해 각종 향기는 내가 살고 있는 온누리라는 동네에 태초부터 지금까지 가득하다.
다만 사람들의 하늘 문(門)인 코의 후각이 역치현상에 의해 둔해졌을 뿐 냄새라는 향기는 인간들의 천하만국(天下萬國)에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
역치현상이란 같은 냄새를 오래 맡으면 그 냄새를 별로 느낄 수 없는 현상이다. 동물과 같은 종인 사람들은 결코 냄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지금도 냄새는 귀천을 따지고 사랑의 묘약(妙藥)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사향은 사향노루 수컷의 향낭에서 채취하여 약재나 남녀의 사랑을 위해 여자들이 사용했다는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의 이야기는 중학교 3학년 아이에서 사내놈으로 자라는 나에게 꽤나 흥미로웠다.
어떤 예쁜 여학생이 사향을 뿌리고 나를 유혹할까를 상상하며 남몰래 두근거림을 다독였던 기억에 살프슴이 나와도 싫지는 않다.

사람들의 보통 인식은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멋지다라는 말이 대표적일 것이다. 나의 경우도 냄새의 좋고 나쁨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무심코 범해 마음과 실제 행동이 전혀 다름을 느낀다. 사회학에서는 이러한 오류를 ‘워런 하딩의 오류’라고 불린다지만 글쎄 내 코는 사냥개 코를 닮아 한 치의 실수가 없다.
한번 유심(有心)해보자. 부엉이와 올빼미 소쩍새는 다 같은 부류들이다. 그러나 시인 미당이 밤새워 불러낸 소쩍새는 머리에 우각(偶角)이 있어 모양새로는 부엉이, 올빼미와 구별되듯 냄새로 사람을 재단하는 내 코의 행위는 모든 사람은 같은 부류지만 소쩍새처럼 서로 다르게 사람을 구별하게 된다.


음식점의 물컵에서 풍기는 역겨운 화장 냄새의 폭력은 비위를 울렁거리게 하고 웨이터에서 요란하게 풍기는 화장 냄새는 들숨 날숨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더욱이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멀어지는데도 냄새는 공기 중에 머물러 손 부채질을 하게 된다.
눈과 내 마음은 편견이 있겠지만 하늘문은 속일 줄 모르고 정직하고 정확해서 하늘문 내 코에서는 편견이 없다. 내 마음의 편견이 없는 한 내 코의 후각은 정확하다.
지하철이나 샤핑센터, 걷기 운동을 할 때 오고가며 스치는 사람들의 고약한 냄새는 열이면 열 모두 제 각각이어서 마스크도 뚫고 들어와 숨을 고를 때가 많다.

노린재나 향란각시(노래기) 버금가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은 남녀 구별 없이 토인(흑인)아니면 영락없이 남미계통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인종 차별인가? 그들이 들고 다니는 핸드백들은 모두 명품들이 많은 편이다.
한국 사람들이 토요타를 독점하고 골프장을 독점하듯. 홀인원도 한국 사람들이 독점하는 것 같다. 나의 편견일까? 나는 어쩐지 명품 가방과 고약한 향수 냄새는 궁합이 틀린 것이 아닌가를 의심해본다. 아마도 묵은지 같은 꼰대 기질에서 나오는 시대착오라 해도 후각을 위해서 악취를 참아낼 수 있는 수양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침묵하자니 열불이 나고 말해봐야 손해 보기 십상이어서 이래저래 내가 들고 있는 패는 따라지 한 끗인 듯하다.
무서울 게 하나도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 추석의 달빛아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비누냄새 풋풋했던 그림내(정인, 혹은 애인)의 머리 냄새가 가을날 어디선가에서 나를 불러내는 듯 하다.

<이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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