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트 실버는 ‘21세기 예언자’라 불리는 예측의 대가이다. 그는 지난 2008년 미국 대선을 주별 결과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모두 맞히면서 명성을 얻었다.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출신인 실버는 메이저리그 승부예측 프로그램인 페코타(PECOTA)를 개발한 인물이다. 그의 예측모델은 스포츠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실버는 자신이 하는 예측의 정확성이 높은 것은 무수한 정보들 속에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소음’을 제거하고 ‘신호’를 찾아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우리가 예측에 실패하는 것은 정보부족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며, 오히려 정보가 너무 넘쳐나 판단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그는 지적한다. 정보의 대부분은 ‘신호’가 아니라 ‘소음’이라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발생한 참사의 대부분은 소음 속에 묻혀있는 신호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해 초래한 재앙이었다. 9.11 테러와 후쿠시마 원전사고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바로 그랬다. 이들을 예측할 수 있었던 많은 신호들이 소음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신호를 제대로 감별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과잉정보’는 결국 ‘과잉소음’이 될 뿐이다. 과잉소음은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본질을 볼 수 없도록 만들어 바른 판단을 저해하게 된다. 실버가 지적하는 ‘소음과 신호’는 비단 미래 예측에만 국한된 설명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 소음이 신호의 감지와 포착을 방해하는 사례들은 무수하다.
동쪽에서 소리를 낸 후 서쪽을 공격하는 ‘성동격서’는 소음 때문에 신호를 놓치게 되는 인지적 맹점을 이용한 전법이다. 동쪽에서 거센 함성이 들리면 그쪽으로 신경이 집중되고 서쪽에 대한 주의는 소홀해지게 된다. 그때 서쪽을 공격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성동격서’는 과거의 군사적 전법에만 머물지 않고 21세기 들어서까지 관심을 가려 진실을 호도하는 미디어 전략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특히 사회가 갈수록 ‘진영화’되고 ‘파편화’되면서 난무하는 소음은 미디어의 일상적인 풍경이 돼 버렸다.
진실을 드러내기보다는 미디어가 원하는 목적과 입맛에 맞게 여론을 재단하고 형성하는 데 소음은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수많은 미디어가 유병언 일가와 관련한 선정적 보도에 치우침으로써 실체적 진실 규명 목소리는 파묻혔던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후에도 미디어의 이런 행태는 별로 달라지 않은 채 반복돼왔다.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의 관심을 호도하기 위한 미디어의 ‘소음 전략’은 오늘도 어김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영양가가 전혀 없는 쓰레기 같은 기사들이 마구 생산돼 나온다.
대선 정국에서 후보들의 자질과 도덕성을 철저히 검증하려 들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를 보호하고 엄호해주려는 듯한 ‘대변인 언론’들이 너무 많다. 내심 지지하는 후보에게 불리한 메시지는 외면하면서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은 이런 미디어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수법이다.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이 터지자 일부 매체들은 어김없이 제보자 신상 털기를 통해 본질을 흐리면서 프레임을 전환하는 그들만의 전형적인 수법을 구사했다. 여기에 대장동 개발의혹이라는 새로운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이들의 의도대로 고발사주 의혹은 국민들의 시야에서 거의 사라졌다. 지지후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 그것을 철저히 파헤치기보다 해명에 중점을 둔 보도에 치중한다.
마음에 안 드는 후보에 대해서는 ‘듣보잡’ 인사들이 원색적 언어로 SNS에 올리는 내용들까지 ‘기사’로 포장해 마구잡이로 내보낸다. 그러면서 소음의 데시벨은 더 올라간다. 그리고 이런 일부 미디어들의 불순한 의도와 교묘한 말장난에 적지 않은 뉴스수용자들은 마리오네트 나무인형처럼 줄잡이의 손놀림대로 춤을 춰댄다.
네이트 실버는 바로 이런 사실을 꿰뚫어봤다. 그는 특히 선거와 관련한 뉴스들에 문제점이 많다고 봤다. 그는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선거 기사 대부분은 신호를 찾아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저 지면을 메우기 위한 ‘필러(filler)’일 뿐이라고 꼬집는다. 실버가 관찰한 것은 미국 언론이다, 그러니 그가 한국 언론을 관찰했더라면 훨씬 더 적나라한 언어로 비판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디어는 난무하는 소음을 제거해 진실과 사실을 드러내주고 뉴스수용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미디어가 이런 본령에 충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소음을 제거해 줘야 할 미디어가 오히려 판단을 흩트리는 소음 만들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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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