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새 구두

2021-09-30 (목) 이중길 / 헤이마켓, VA
크게 작게
나는 수 년 전 뉴욕주에서 버지니아로 이사할 때 발견한 새 구두를 신발장에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20년 전에 구입한 후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잊고 지냈던 구두, 외출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그 구두를 신을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색깔이 독특하고 반짝거리는 새 구두를 신발장에 장식물처럼 간직한 것에 대하여 와이프는 불평이 많다. 사실 나는 구두에 대하여 다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구두 앞이 뾰족한 모습 때문에 구식형이고 발가락이 아프지 않을까, 혹은 구두의 색깔이 너무 화려해 노년의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 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구두로 인하여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구두를 신고 참석한 야유회는 내 기억 속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시절, 젊은 학생들이 야유회에 불편한 구두를 신었던 차림새를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해할 수가 없겠지만... 남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함께 다리를 묶고 달리는 게임에서 구두로 인한 아픔 때문에 구두를 벗어 던져버리고 달려야만 했다.
게임 후 신발을 찾았으나 누군가 숲 속에 감추어 버리고 일찍 떠나 버렸다. 그 때의 사건은 새 구두에 대한 좋지 않은 에피소드로 추억 속에 남아 있다.

20년 동안 집 구석에 숨어 있던 새 구두를 찾아 신발장 속에 장식물처럼 진열된 구두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있다. 또한 수년 전에 산 영국산 골프신발 또한 신발장에 놓여있다.
새 것을 쉽게 사용하지 않는 나의 버릇은 와이프에게 불평의 빌미를 준다. 나와는 반대 성격의 아내는 물건을 사면 즉시 사용해 버린다. 사용하지 않고 간직만 하는 물건은 새 것이 아니라 하면서… 아내는 나에게 새 것을 아끼는 ‘깍쟁이’ 성격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새 것을 헌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에 대하여 불편해 한다.
깍쟁이란 어원의 뜻도 모르면서 뱉어내는 아내의 핀잔이 나를 화내게 만들었다. 깍쟁이란 인색하고 얄미운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새로 구입한 물건을 마음 속에 새 것으로 간직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은퇴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오늘이 마지막인 날인 것처럼 아끼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남은 여생을 아끼지 말고 살아야 되겠지. 새 것을 오랫동안 갖고 싶은 욕망, 그것을 마음 속에 오래 간직하는 일은 나의 행복이며 기쁨이다.
새 것을 사용하지 않고 간직만 한다면 그것이 새 것일 수 없고 우리의 삶에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램프가 아직 불타고 있는 동안 인생을 즐겨라, 장미 꽃이 시들기 전에 그것을 따라”스위스 시인 요한 우스테리 말이다. 은퇴한 지금, 나는 이 십 년 전에 구입한 새 구두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
카메라를 이용해서 내 모습과 밝은 색상의 구두와 함께 젊음을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진열장에서 외롭게 묻혀 있는 구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싶다. 언젠가는 저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내 마음속의 젊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리라.

<이중길 / 헤이마켓, VA>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