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계절, 천고마비의 가을이 찾아왔다. 세상은 나날이 예측불허. 천태만상의 한치 앞을 모르는 안개 속 같은 세월이지만, 철 따라 우리 곁을 찾아와 주는 사시사철 계절이 있어 자연 속에서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되나보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데, 평소 잘 먹는 것이 건강 비결이란 생각이 과체중을 가져오게 한 주범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요리연구가의 말을 빌리면 하루 두 끼 식사가 노년의 건강밥상이란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오래 묵은 체중은 나이가 들자 차츰 생체리듬에 삐거덕거리며 이상신호를 보낸다. 길어진 노후를 더 늦기 전에 하루 두 끼 식사로 습관화 시켜보자고 이제라도 작심해 본다.
지난날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살았던 다이어트란 말이 어느 사이 입에서 사라진 건 실천 이후 조금씩 가벼워지는 몸을 의식하고부터이다.
생기발랄했던 시절 늘어나는 몸매에 노심초사 걱정하는 날이면 곁에 계신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 “살찌는 것도 한 때다. 늙어봐라. 찌고 싶어도 살은 빠지기 마련이니 먹고 싶을 때 잘 먹어라.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또 어떤 분은 나이 75세를 넘기고 보니 하루가 다르게 체중이 줄어들고 키도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고 은근히 걱정을 하신다.
늙어보니 그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나서 신체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하루 두 끼 식사를 하다 보니 점심은 왕처럼 차려 먹게 된다. 갖은 나물과 소고기는 잘게 썰고 무치고 볶아 흰 쌀밥 위에 얹어 계란 프라이로 마무리하면, 큰 사발 가득 색깔도 좋고 먹기도 편해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평소 먹는 간편식단이면서도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려는 남녀노소의 건강식으로는 으뜸이다.
오늘은 먹다 남은 몇 가지 나물이 있어 이것저것 섞어 넣은 비빔밥을 마주하고 앉아 있노라니 TV에 눈길이 간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각종 분규 소식들이 매 순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뉴스들로 가득하다. 마치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이 인류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양.
때로는 더불어 먹는 한 끼의 식사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한결 부드럽게 밀착시켜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금 맛있게 먹고 있는 비빔밥을 대하다 보니 비유하건대 각기 다른 피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마치 한 사발의 비빔밥 속에 섞여져 있는 양, 잘 버무려진 나물처럼 보인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경, 그리고 배려를 중요시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살아간다면 지구촌의 미래는 더욱 밝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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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우드스톡,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