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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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잘 해!

2021-09-19 (일) 박보명 /수필가, 매나세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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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하고 보니 하루의 일과가 없어져서 하루를 그냥 까먹는 기분이다. 자영업을 하다가 ‘이제 그만 하라’고 자녀들과 주변에서 권유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려 좋은 것이다. 그런데 항상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던 일이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막혀 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독서와 운동은 늘 하던 것이어서 제한을 받지 않아 다행이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치매인지 알츠하이머가 화두로 신문매체에 야단법석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염원하는 인간의 욕망이 옛날의 진시황을 넘어서 인간 100세를 구가하고 ‘ 달나라 관광을 간다’ 는 인간들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보다. 얼마전 신문지상에서 ‘어느 노인의 치매 일기’를 읽게 되었다, 내용인즉 치매 노인을 모신 가족을 설정하여 각자의 마음을 글로 써 본 짧은 수필형식의 글이었다, 그렇다면 ’ 막상 치매는 나이를 구분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 하긴 ‘ 너도 나도 바쁜 세상에 한 눈 팔 시간이 없는 세상에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오늘날에 많은 병들은 나이와 상관없는 것은 아닌가.나이 젊은 사람들도 어른 못지 않게 당뇨.혈압,비만,비염,알레르기,신경성 질환이나 정신병들을 달고 살지 않나 싶다.‘ 나이는 못 속인다 ’ 란 옛 어른들의 이야기는 이제 맞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경쟁과 비교에서 벗어나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느낌이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늙은 사람의 몸 움직임을 젊은 사람이 시험하는 시물랫을 한 기억이 떠 오른다. ‘ 왜 저 노인은 바로 걷지 못하고, 허리는 구부정하고 말은 분명하게 하지 못 할까?’ 이상하다고 고개를 기웃등 하는 것을 보고서 ‘너도 머지 않아 그 노인을 따라 간다네’ 하고 넌지시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수필의 내용을 요약해서 일부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오늘따라 날씨가 흐리다. 구름사이로 날씨가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꼭 요즈음 내 정신 같다. 내 나이 벌써 아흔 다섯.옛날 같으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한참 터를 잡았을 나이인데 아직도 이땅에 버티고 있다. 때로는 ‘하나님 어서 날 데려가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다가도 ‘ 아니,내 새끼들하고 손자 손녀 얼굴 보면서 여기서 더 살레요” 한다. 하늘 나라에 가면 영원히 보고 싶어도 못 볼 텐데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그래도 빨리 떠나줘야 할 것 같다. 큰 딸이 너무 고생이다. 누가 말했듯이 ‘ 죽음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란 말이 그냥 들리지 않는다. 요사히 젊은이도 너무 바쁘다 보니 부모의 나이를 잊는 것은 기본이요, 생일을 챙겨 드리는 것은 고전이 된 세상에 어르신들만 치매가 온 것이 아니라 자기 나이도 까맣게 잊고 사는 시대에 와 있지 않은가 .아들 집을 방문하여 이곳에 이사 온 햇수를 물어보니 답이 금방 나오지 않는 실정이다 보니 내가 사는 것인지 아니면 살아주는 것인지 분간이 안된다.

하긴 낀세대는 우리보다 더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자녀들 뒷바라지 하랴, 부모 돌보랴. 직장에서 상사들 비위 맞추랴,아랫사람들 챙기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라. 그래도 ‘아 세월은 잘 간다’ 아닌가. 그러나 흐르는 물은 쉬임없고,시간은 멈추지 않고 똑딱 똑딱 열심히 앞으로 어김없이 치고 가고,나이는 먹어 가고, 달력은 뛰어가고, 몸은 예전같지 않고머리는 어느새 흰머리가 생기고, 활력은 예전같지 않고, 정년은 차춤차춤 다가오고,그렇게 모든 것은 생겨나 죽음으로 달려가는 것 아닌가. ‘가고 싶어 갈 때’ 가 좋은 것은 그 때가 행복이란 것을 미처 몰랐을 때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생각난 말이 ‘있을 때 잘해! 잘 나갈 때 정신차려! ’ 문구와 함께 한용운의 시가 생각났다.

그리고 나서 떠 오르는 단어가 ‘ 내일은 없다!’ 란 말도 의미있는 말이라고 여겨지고 그보다 앞서 현재가 더 중요하다고 어떤 현인이 말 했는지 모른다. 영어에 PRESENT은 ‘ 현재이자 선물이다.’ 라는 의미가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그래서 어느 현자가 말하기를 ‘ 과거는 어음이고, 현재는 현찰이고, 내일은 수표이다 ! ’ 라는 말이 실감이 나면서도.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 내일의 태양은 내일 뜬다! ’ 라는 명언을 곱씹어 본다.

<박보명 /수필가, 매나세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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